27일 정부 공공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의사 파업이 이틀째 이어지면서 환자들이 겪는 불편이 더 커지고 있다. 전공의의 90%가 집단 휴진에 나선 대형병원은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에 전공의들은 “불응하겠다”고 맞서고 있어 의료 공백 사태는 장기화할 전망이다.
“진료 지연될까 우려”
이날 오전 11시께 찾은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응급진료센터 앞은 응급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로 가득했다. 환자와 보호자 13명이 대기표를 뽑고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채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는 환자도 보였다.이곳 응급실에선 지난 21일부터 전공의 14명 전원이 집단 휴진에 들어갔다.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는 환자 A씨(68)는 “응급실에 왔는데 30분째 대기만 하고 있다”며 “다음달 3일 예정된 진료도 지연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온라인 카페에는 수술 및 진료 지연에 불만을 나타내는 게시글이 쏟아졌다.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와 출산을 앞둔 임신부들의 걱정이 많았다. 한 임신부는 네이버 카페에 “2차 기형아 검사 결과 고위험군 진단을 받아 전화 수십 통을 걸어 서울아산병원에 다음달 1일 초음파 진료를 예약했는데 의료계 파업으로 예약을 취소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멘붕(멘탈붕괴)’이다”고 적었다. “아이가 열이 심한데 몇 년간 다닌 동네 소아과마저 문을 닫아 실망스럽다” “파업으로 문 닫은 동네 병원은 절대 안 간다” 등의 성토도 이어졌다.
이틀째 이어진 파업으로 남은 의료진의 업무 피로는 늘고 있다. 전공의와 전임의가 맡던 야간 당직과 응급실 근무는 교수급 의료진이 대신하고 있다. 업무가 가중되자 일부 대형병원에서는 외래 진료를 더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 부족으로 일부 병원은 간호사까지 전공의 업무를 떠맡고 있다.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교수급 의료진이 투입돼도 전공의 업무를 모두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전공의가 하던 응급 처방, 심전도 검사, 상처 소독을 비롯해 일부 병원은 당직근무까지 일반 병동 간호사가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계 내부서도 “파업, 불신만 키워”
파업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자 의료계 내부에서도 개원의를 중심으로 파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모씨(45)는 “파업을 지지하지 않아 병원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환자들을 버리고 파업하는 것은 의사 본분에 어긋난 데다 의사에 대한 불신만 키운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주혁 성형외과 전문의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의사협회 2차 파업에 동참한 의원 수는 전체의 10%에 불과하다”며 “대부분 의사들은 이 파업이 명분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적었다.대한간호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코로나19 재확산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의료현장을 떠난 것은 윤리적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도 같은 날 의사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성명서에는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124개 단체가 서명했다.
정부와 의료계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의료 공백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사직서를 제출하는 단체행동에 나섰다. 정부가 전날 전공의와 전임의를 대상으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데 따른 반발이다. 전공의들은 휴대폰을 끄는 방식으로 업무개시 명령서 수령을 회피하고 있다. 전국 77개 병원 전임의들도 이날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공동 성명서를 내고 의료 파업에 적극 가담할 의지를 내비쳤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전공의 수련기관 200곳 중 165곳을 집계한 결과 전공의 8825명 가운데 근무하지 않은 인원은 6070명으로 전체의 68.8%에 달했다. 전임의는 1954명 중 549명이 나오지 않아 비근무 비율은 28.1%였다.
양길성/박상익/김남영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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