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구구단·소금 유통…목간에 새겨진 백제인들의 삶

입력 2020-08-27 17:21   수정 2020-08-28 03:14

2011년 충남 부여 쌍북리에서 상하로 일정한 간격의 선을 긋고 다양한 숫자를 적어넣은 목간(木簡)이 발견됐다.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숫자들의 전모가 적외선 사진을 통해 드러나자 한국 수학사가 바뀌었다. 백제인들의 셈법을 담은 구구단표였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께의 진대(秦代) 구구단 목간이 발견됐고, 일본에서도 7세기 후반의 구구단 목간이 나왔지만 한반도에서는 관련 유물이 없어서 구구단은 없었다고 치부되던 터였다.

《목간으로 백제를 읽다》는 100여 점에 달하는 백제 목간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읽어내고 백제 사회 복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15명의 연구자가 지난 6년 동안 개인 시간을 쪼개 연구한 결과다. 과학적 보존 처리와 적외선 촬영 등을 통해 판독한 목간의 기록은 기존 백제사 연구에서 밝혀낸 내용을 보완하는 자료뿐만 아니라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지 않은 자료가 포함돼 있어 백제인의 생활상을 짐작하게 한다.

부여 쌍북리 출토 목간에서 확인된 ‘외경부(外部)’라는 명칭은 기존 사서와 문헌 자료에서는 보이지 않는 행정기구 명칭이다. ‘경()’은 창고라는 뜻. 외경부는 창고의 한 종류인 외경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왕실 재정의 출납과 관계된 창고인 내경과 달리 국가 재정의 출납과 관계된 창고라고 한다.

2002년 부여 궁남지에서 발굴된 ‘지약아식미기(支藥兒食米記)’라는 목간은 도성에 필요한 약재를 운반하는 약아(藥兒)들에게 식량으로 쌀을 지급한 현황을 기록한 것이다. 이를 통해 백제의 의약제도와 일당제, 당시 사용된 도량형 등을 알 수 있다.

백제에서만 유일하게 출토된 남근 모양의 목간, 불로장생을 위한 선약(仙藥) 복용 풍습을 보여주는 오석 목간, 음양 사상을 보여주는 태극문 목제 유물은 백제인의 도교적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보희사’라는 절 이름과 함께 부여 능산리 304호 목간에 쓰인 ‘송염(送)’이라는 글자는 당시의 소금 생산과 유통 과정을 짐작하게 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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