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서 절대적 평등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첫째, 대부분의 사람은 업적이나 기여에 따라 보상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나눠 가진다고? 그건 공산주의야. 내가 남보다 열심히 일하는데 왜 남보다 더 많이 받고 더 잘살 수 없어야 해?” 이런 식의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남보다 더 잘하고 더 노력하고 더 중요한 일을 하면 이에 상응하는 차별적인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큰 격차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평사원 임금과 대비한 최고경영자(CEO)의 임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데도 불구하고 언론 등에서는 이를 지나치다고 보도하고 일반인들도 이에 동조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대부분의 사람은 ‘기회의 평등’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그리고 원하는 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모든 사람에게 교육받을 평등한 기회가 부여돼야 하고 사회적 배경이나 출신 학교와 관계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취업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처럼 평균적인 한국인은 격차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업적주의 원칙에도 대체로 동의하고 ‘기회의 평등’도 대개는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격차와 관련해 언론 기사나 사람들의 일상적인 의견 표명에서 흔히 등장하는 게 ‘부의 대물림’ ‘교육의 대물림’ ‘부모의 능력이 나의 스펙’ 같은 표현이다. 이를 근거로 미뤄 보면 격차와 관련해 사람들이 가장 크게 문제 삼는 것은 가족적 배경과 이것이 교육 및 직업(취업), 나아가 소득에 미치는 영향이다.
한국의 경우, 교육과 취업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부잣집 출신이든, 가난한 집 출신이든 교육받을 수 있다. 취업의 문도 공식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이 같은 명목상의 ‘기회의 평등’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기회에 커다란 실질적 격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있는 집 애들은 과외도 받고 그래서 높은 수능점수를 받는데 나는 부모가 돈이 없어 못 해주니 불만이다. 있는 집 아이들은 성적이 나보다 좋지 않은데도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좋은 대학에 가는데 나는 형편이 되지 않아 요구되는 스펙을 맞출 방법이 없으니 속이 터진다. 있는 집 애들은 조기유학도 가고, 해외로 영어연수도 1~2년씩 다녀오는데 난 그러지 못해 취업 면접 때마다 영어 때문에 떨어지니 정말 눈물 난다. 최근에는 로펌이나 컨설팅 회사 등이 부모들과의 비즈니스 기회를 염두에 두고 돈 있고 지위 있는 집 자녀들을 특별 채용한다고 하니 나 같은 서민은 어쩌란 말이냐…. 바로 이런 것들이 업적주의와 기회의 평등을 수용하는 평균적인 한국인들이 참지 못하는 격차다.
정부가 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면서 시민단체에 학생 추천권을 주겠다는 구상을 발표하자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그것이 명백히 새로운 기득권층을 위한 사실상의 기회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진과 국회의원, 각종 정부위원회 위원들 그리고 지방정부의 별정직 공무원 등의 면면을 살펴보면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이미 기득권 세력이다. 이들에게 공공의대 학생 추천권을 준다는 것은 의료 격차를 해소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숫제 제도적으로 기득권을 대물림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지금도 ‘레몬’이 적지 않은 의료시장에 더 많은 ‘레몬’이 공급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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