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 집값 올라도 규제 안 하는 이유

입력 2020-08-28 17:43   수정 2020-08-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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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주변 부동산 시장을 취재하기 위해 최근 만난 중개업자 수미 박 씨는 요즘 무척 바쁘다고 했다. 매물을 구해달라는 고객 요청이 갑자기 늘어나서다. 박씨는 “100만달러 이하짜리 매물이 나오면 서로 사겠다며 경쟁이 붙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보다는 덜하지만 요즘 미국 부동산 시장에도 불이 붙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정반대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던 올 3~4월만 해도 부동산 중개시장은 개점 휴업 상태였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달 발표한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지수’를 역산해 보면 미국 평균 집값은 2012년 2월 이후 올해 5월까지 약 45% 급등했다. 미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 자료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미국 주택 중간값은 지난달 기준 30만4100만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작년 평균(27만1900달러)과 비교하면 11.8% 오른 수치다.

거래도 활발하다. 지난 7월 주택 매매 건수는 총 586만 건으로, 전달 대비 24.7% 급증했다. 협회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68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이런 부동산 지표는 경제 상황과는 딴판이다. 무엇보다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올해 3월까지 3~4%로 완전 고용에 가까웠던 미 실업률은 4월 이후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기준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0년 이후 최고치다.

미국 집값이 왜 갑자기 뛰었을까. 시중에 대규모로 풀린 통화가 실물자산 투자를 유도했다는 분석이 많다. 역대 최저치인 금리 역시 수요자들의 매수 부담을 덜어줬다.

미국에서 주택 구입자들은 별다른 규제 없이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도 다르지 않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후 한국과 같은 거치형(일정 기간 이자만 내는 방식)은 사라졌지만 대부분 30년간 원리금을 나눠 갚으면 되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다. 자영업자나 소기업 경영자라도 15년 이상 장기로 빌리는 게 대부분이다.

집을 구입할 때 납부하는 취득세와 기존 주택을 팔 때 내는 양도세도 거의 없다. 뉴욕이나 뉴저지주의 경우 양도세가 22%로 명시돼 있지만 시세차익 50만달러까지는 비과세다. 세금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보유세율이 높은 편이지만 상당수 주(州)에선 과세표준을 최초 구매가격 기준으로 잡거나 인상 폭 자체를 매우 낮게 책정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세금이 뛸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다. 모든 보유세가 해당 지역의 발전 용도로 사용되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하다. 시민들이 세금을 더 내면 그 혜택을 자신과 가족이 체감할 수 있다.

한국과 다른 건 또 있다. 단기간 집값이 치솟았는데도 정부 어디서도 규제 강화나 증세를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동산시장 감독기구를 설치하자는 주장은 상상할 수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깜짝 서명한 ‘세입자 강제 퇴거 중단’ 명령도 따지고 보면 시장 영향이 거의 없는 행정 조치에 불과하다. 연방 자금을 지원받은 공공주택을 대상으로 한 데다 퇴거 중단 역시 요청 또는 검토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행정 조치 효력도 연말까지로 짧다.

미국에서 주택 가격은 정부 정책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 즉 시장이 결정하는 구조다. 집값이 뛰면 건축업자들이 공급을 늘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안정되는 과정이 되풀이됐다.

안타깝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른 것 같다. 전 국민의 절반이 거주하는 서울 및 수도권에선 항상 주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오피스텔까지 전부 포함한 서울지역 주택 보급률은 작년 기준 95.9%에 그쳤다. 보급률이 전년 대비 되레 0.4%포인트 감소했다. 경기권 보급률도 99.0%로 여전히 낮다. 수년간 재건축·재개발을 막는 데만 급급했던 결과다.

일각에서 전국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었다고 주장하지만 경북(111.7%) 전남(111.3%) 등에서만 집이 남아돌 뿐이다. 살 집이 넉넉하면 투기 수요가 설 자리도 줄어든다.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반(反)시장 정책을 23차례나 내놓을 이유가 없다.
50년 만에 최저금리가 부동산 가격 끌어올려
과잉 유동성은 요즘 세계 자산시장의 공통된 현상이다. 주택금융업체인 프레디맥에 따르면 미국의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이달 중순 연 2.88%를 기록했다. 1972년 관련 금리를 집계한 이후 가장 낮다. 작년 동기(연 3.60%)와 비교하면 0.72%포인트 내렸다. 15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연 2.44%에 불과하다.

미국에선 대부분 집값의 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신용도가 낮은 젊은 층도 약간의 금리 부담만 더 질 뿐이다. 소득 상위층은 더 낮은 금리로 더 많이 빌릴 수 있다. 대출 이자에 대해 매년 소득공제가 가능하다. 올해 집값이 급등하면서 모기지 신청 건수가 작년 대비 20~30% 늘었다는 게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 설명이다.

초저금리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중앙은행(Fed) 인사들이 “경제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경기 하강기엔 기준금리 인상이 쉽지 않다. 제롬 파월 Fed 의장도 27일(현지시간) 열린 잭슨홀 미팅에서 “물가가 관리 목표인 2%를 넘더라도 당분간 정책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저금리 시기마다 부동산 가격이 불안정해지는 역사가 반복돼 왔다.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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