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제품 가격 하락으로 울상 짓던 반도체업계가 최근 들어 갑작스러운 호재를 만났다. IBM, 인텔 등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삼성전자가 7나노미터(㎚·1㎚=10억분의 1m)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를 이미 수주했거나 앞으로 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파운드리 낙수효과 기대 높아져
IBM이 삼성전자에 위탁해 생산하겠다고 밝힌 건 차세대 서버용 CPU인 ‘파워 10’이다. 이 CPU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의 최첨단 기술인 극자외선(EUV) 기반 7㎚ 반도체 공정을 통해 생산될 예정이다. 두 회사는 아직 구체적인 파운드리 물량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파운드리는 IBM이 처음 생산하는 7㎚ CPU인 만큼 단일 물량을 넘어 지속적인 위탁생산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도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업체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큰 폭의 낙수효과가 기대된다.인텔은 7㎚ 반도체에 대한 파운드리 발주 의사를 밝혔을 뿐 삼성전자나 TSMC 가운데 어떤 기업에 할지는 아직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파운드리 물량과 관련해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단서를 남겼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인텔은 향후 7㎚ 위탁생산 물량이 자사 매출 원가의 20% 혹은 그 이상일 것이라고 했다”며 “지난해 인텔의 CPU 매출 원가는 약 216억달러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이 금액의 20%는 43억달러”라고 말했다. 그는 “파운드리 업체로서는 최소한 이만큼의 신규 매출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실제 주문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인텔의 파운드리를 수주하지 못할지라도 일단 물량이 나오면 관련 업계가 전체적으로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파운드리 가치사슬(밸류체인) 내에 있는 기업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상황은 국내 반도체산업 입장에서 큰 성장의 기회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생산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인텔조차도 공정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삼성전자가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다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유리한 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소부장株 다수 수혜 전망”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로 인한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다수 언급했다. 김동엽 한국경제TV 파트너는 덕산네오룩스, 에스앤에스텍, 에프에스티를 추천 종목으로 꼽았다. 김동엽 파트너는 “반도체 생산은 지속적으로 초미세공정 대결이고 EUV 시스템이 중요한 만큼 관련 기업의 큰 수혜가 기대된다”며 “에스앤에스텍은 EUV 공정의 필수 소재인 블랭크마스크 국산화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김남귀 한국경제TV 파트너는 리노공업, 원익IPS, 테스나를 추천했다. 리노공업은 반도체 테스트에 필요한 검사용 소켓을, 원익IPS는 비메모리 전공정 장비를 생산한다. 테스나는 비메모리 반도체 후공정 업체다.
김남귀 파트너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비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비메모리 반도체는 자율주행 등 각종 첨단 전자장치에 필수 요소인 만큼 위탁생산 수요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 설비 증설을 이미 예고했다”며 “향후 관련 분야의 장비와 부품 등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경락·김지욱 파트너가 운영하는 투자컨설팅 모임 ‘24시 클럽’은 DB하이텍, 코아시아, 테스나를 투자 유망주로 추천했다. 이 가운데 DB하이텍은 7㎚ 같은 최첨단 반도체가 아닌, 아날로그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이다. 그래도 수혜주로 지목되는 건 TSMC나 삼성전자가 신규 파운드리 물량을 처리하느라 아날로그 반도체 생산 여력이 부족해지면 이 물량이 DB하이텍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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