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달러의 기업가치로 투자를 받은 미국의 정보통신(IT) 유니콘들이 상장(IPO)에 나서고 있습니다.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180억 달러), 데이터분석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200억 달러),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기업 스노우플레이크(124억 달러)등 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의 데카콘들을 중심으로 유니티, 수모로직, 아사나 등 다수의 유니콘 기업들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상장을 신청했습니다.
이들은 미국 주식 시장에서 IT를 중심으로 한 성장주가 각광 받으면서 유니콘과 이들에 투자한 벤처캐피탈(VC)들은 지금을 상장의 적기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지난해 공유 오피스 업체 위워크의 상장이 무산되고 우버, 리프트 등 상장에 성공한 업체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치며 한동안 얼어붙었던 미국 IPO 시장이 최근 유동성 장세를 타고 다시 불이 붙는 모양새입니다.
◆장밋빛 꿈꾸지만...손실 못 줄이는 유니콘에 시장 '갸우뚱'
하지만 이들의 IPO를 바라보는 눈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가장 큰 우려는 이들 기업들이 과연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시장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통상 VC와 같은 벤처투자자들은 당장의 현금흐름보다는 장기적으로 성장성이 높은 사업모델을 가진 기업에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상장 후 주식 시장의 투자자들은 성장성 이상으로 현금흐름 창출능력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둡니다. 최근 PDR(Price to Dream Ratio·주가희망비율)라는 단어가 유행하며 주식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되려 신중한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은 오히려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을 중시하는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비상장 시장에서 많게는 수십조원 수준의 기업 가치를 인정 받은 이들의 주가가 시원찮다면 그 여파는 벤처투자 시장 전반의 밸류에이션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 대유행으로 수 많은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가 깎인 상황에서 올해 하반기 상장 유니콘들의 성패가 앞으로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의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은 딱히 투자자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팔란티어의 2019년 매출액은 7억 42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5%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당기순손실 규모 역시 매출액에 맞먹는 5억 800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의 직격탄을 맞은 에어비앤비는 올해 2분기 매출액이 3억 35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66% 가량 줄었습니다. 전체 직원의 4분의 1 수준인 2000여명의 직원을 줄였지만 분기 손실이 4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2억 42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스노우플레이크 역시 당기순손실이 1억 7130만 달러로 적자 기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유니티, 수모로직 등도 대규모 적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사업 모델을 통해 서비스의 필요성을 시장에 인식시켰지만 유니콘이 된지 수년이 지나도록 적자 폭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지긴 힘듭니다. 해외투자 펀드를 운용하는 한 국내 VC 심사역은 "올해와 내년이 그간 벤처붐 속에서 버블 논란이 일었던 스타트업에 대한 밸류에이션에 대한 시장의 판단이 이뤄지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쟁 대기업 시총 역전한 韓유니콘..."과연?"
한국도 이 흐름의 예외는 아닙니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한국에는 총 10개의 유니콘이 있습니다. 쿠팡, 크래프톤, 옐로모바일, 위메이크프라이스,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무신사, L&P코스메틱, GP클럽, 에이프로젠, 야놀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 풍경을 바꾸고, 해외에서 K뷰티 붐을 일으키는 등 이름을 떨친 기업들이지만 이들 중 기업 공개를 통해 시장에서 그 가치를 평가 받은 기업은 전무합니다.
1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쿠팡이 시가총액 3조 3000억원인 이마트와 2조 2000억원인 롯데쇼핑, 2조원인 신세계와 1조 3000억원인 현대백화점을 합친 것보다 장부상 가치가 높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2010년 설립된 쿠팡은 10년 간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습니다.
보기 드물게 성장성과 수익성을 함께 가져가고 있는 무신사는 작년 말 세콰이어로부터 투자를 받으면서 기업가치 2조 3000억원을 인정 받았습니다. 무신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2197억원 영업이익은 49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적자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벤처 업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지만 같은 해 6조 3942억원의 매출과 467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SSG닷컴을 통해 온라인 쇼핑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신세계의 시총을 넘어선다는 것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실 이처럼 높은 밸류에이션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그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지만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는 '엑시트'가 어려워진다는 점에선 저주와 같습니다. 한국의 유니콘 가운데 엑시트에 성공한 기업은 지난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된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뿐입니다.
매년 유니콘급 기업 수십개를 인수합병(M&A)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아마존 등 소위 MAGA가 존재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 대기업이 유니콘 기업을 인수한 사례는 전무합니다. 기업들 입장에선 자신들보다 매출액이 10분의 1도 안되고 언제 흑자 전환할지 모르는 기업을 큰 돈을 주고 살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비상장 스타트업에 있어 인수합병(M&A)이나 세컨더리(구주인수), LP(출자자)지분유동화 등 회수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만기가 대부분 5~8년인 VC나 사모펀드(PEF)들은 아무리 유망하다고 해도 엑시트가 안되는 유니콘과 끝까지 갈 순 없습니다. 민간 자금 비중이 큰 미국과 달리 한국 내 벤처펀드들은 자금의 절반 이상이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책자금이나 직장인들의 돈이 모인 연기금, 공제회 자금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밸류에이션 하락이 한국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보더 더 클 수 있습니다. 한국의 투자자들이 더더욱 지금 미국에서 진행되는 유니콘들의 IPO에 촉각을 기울여야 할 이유입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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