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사들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국내 의료 현실이다. 지역 의료기관들은 월급을 2배씩 올려도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분야 의사조차 구하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원인 진단과 해법은 갈린다. 정부는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의사 수 증원으로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고 했지만 의사들은 "의사 수 부족보다는 수가 등이 문제"라고 맞서고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의-정 갈등의 시작점은 여기부터다.
국내 의료기관의 95%는 민간이 운영한다. 학생이 의대에 들어가 교육을 받고 전문의 면허를 딴 뒤 환자를 치료할 때까지 정부가 투입하는 비용은 없다. 이렇게 배출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 뒤 받는 가격은 비급여 항목을 제외하면 대부분 건강보험 수가로 정해져 있다. 모든 병원이 건강보험공단과 계약을 맺고 건강보험 환자를 치료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의 독립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의료 서비스의 범위, 가격 등에 모두 정부가 개입하는 구조다. 의사들이 정부에 대립하고 '관치의료'라고 지적하는 배경이다.
박정희 정부는 1977년 전국민 의료보험을 설계하면서 국민 저항을 줄이고 도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적게 내고 적게 보장받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런 틀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의사들은 정부가 정한 '시장 가격'이 지나치게 낮고 범위도 좁다고 토로해왔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진료비를 높이고 보장범위를 확대하려면 그만큼 비용이 든다. 이를 위해 국민 저항이 높은 '건강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이른바 '77 패러다임'이다.
어렵고, 힘들고, 환자 사망위험이 높은 분야를 지원하는 의사를 늘리기 위해서는 이에 맞는 비용을 보전해야 하는데 기준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왜곡된 보험 시스템을 40년 넘게 이어왔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지금같은 상황에서 의사만 늘리면 돈 잘 버는 곳으로 의사가 쏠리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격이 통제된 상황에서 공급자만 늘리면 이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수요를 창출할 수밖에 없고 과잉진료, 비급여 확대 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김재혁 목포한국병원 응급의학과장 등 전남 서부 지역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공공의대를 통해 사명감과 선의를 교육받은 학생이 배출돼도 이들이 의료취약지에서 중증 환자를 진료하는데 시스템 상 한계가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전국을 70개 진료권으로 나눠 중증 응급 환자 치료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계산했더니 전문의 2260명, 일반의 998명이 더 필요했다. 인구 1000명 당 활동의사수가 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4명인 71%에 불과한 것도 의사수 부족의 근거가 됐다.
의사들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국민 1인당 외래 진료건수가 연간 16.6회로 OECD 평균(6.8회)보다 높기 때문에 의료 접근성은 좋다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외국은 의사들이 바이오산업, 로펌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데 반해 한국은 대부분 의사가 환자 진료를 보는 임상의사"라며 "활동의사수 만으로는 실제 국내에 필요한 의사가 몇명인지 판가름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와 의사가 대립하고 있지만 적정 의사수는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6년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의사 1인당 환자 수는 50.3명으로, OECD 평균인 13.1명보다 높다"며 "2030년 의사 인력 공급은 여러 시나리오에 따라 과잉일 수도, 부족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의사들이 집단휴진하는 것은 문제지만 정부가 정책을 꺼내든 시점도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은 이유다. 진보시민단체서도 이런 목소리가 나왔다. 사회진보연대는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우려되는 지금 굳이 의사들과 대립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고수할 명분은 전혀 없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