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조규희 "독백 넣은 '겨울 나그네'로 더 깊은 울림 선사"

입력 2020-08-31 17:27   수정 2020-09-01 00:29

“지금은 절망 속에 빠져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지는 게 인생이지 않나요. 비극적인 여행의 끝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2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 나그네’ 전곡을 노래하는 바리톤 조규희(사진)는 31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공연에서 부를 노랫말 소개로 작품 설명을 대신했다. “‘겨울 나그네’ 주인공은 한파 속에서 방랑하고 죽음을 꿈꾸지만 다시 일어섭니다. 마지막에 악사를 향해 ‘노인이여, 저와 함께 떠납시다. 제 노래에 맞춰 손풍금을 연주하지 않겠습니까?’란 대사가 주제의식을 함축해 보여줍니다.”

‘겨울 나그네’는 24곡으로 이뤄진 연가곡이다. 다섯 번째 곡인 독일 민요풍의 ‘보리수’로 친근한 작품이다. 슈베르트가 1827년 30세에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의 시에 음악을 입혔다. 이야기 하나가 전체 곡들을 관통한다. 어느 겨울 사랑을 잃은 청년이 방랑하는 내용이다.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들판을 헤매는 청년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허덕인다. 죽음을 떠올리는 청년은 마지막으로 늙은 악사에게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공연은 무관중으로 열린다. 이날 오전 11시30분부터 롯데콘서트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 롯데문화재단이 지난 5월 시작한 온라인 공연 ‘뮤직 킵스 고잉’의 세 번째 무대다.

독일어 가곡에 정통한 조규희는 1999년 그리스 마리아 칼라스 국제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2000년 독일 로베르트 슈만 국제콩쿠르, 2003년 일본 오사카 프란츠 슈베르트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베테랑 성악가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 미국 필라델피아 등 해외를 오가며 무대에 섰지만 무관중 온라인 공연은 처음이다. “청중이 없어도 연기에 몰입해야 합니다. 이야기를 담은 가곡이니까요. 그래도 관객이 보내주는 눈빛이나 박수가 없는 건 아쉽죠.”

이번 공연은 배우 서태화와 함께한다. 공연 제목이 ‘모놀로그와 함께하는 겨울 나그네’다. 서태화는 조규희가 노래를 부르기 전 독백 형식의 모놀로그로 가곡의 서사를 낭송한다. 함께 무대에 서는 피아니스트 정호정은 피아노 선율로 배경이 되는 분위기를 그린다. “독일 예술가곡은 딱딱하고 어렵다고들 생각합니다. 관객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무대 구성을 바꿨습니다. 한국어 독백으로 시작해 독일어로 노래하죠. 원작이 주는 감동은 그대로 살리면서요.”

한국어 자막은 제공하지 않는다. 관객이 무대와 노래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노래할 때 자막이 깔리면 자칫 관객들의 집중력을 흩트릴 수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배우와 성악가, 피아니스트가 호흡을 맞추는 게 관건입니다. 시선을 계속 무대에 둬야 참맛을 느낄 수 있죠.”

연주자들도 짧은 기간에 호흡을 맞추기 힘든 작품이다. 이들 세 명은 2012년부터 꾸준히 함께 공연을 펼쳐왔다. “호정씨와는 듀엣 공연을 10회 이상 해왔고 태화 씨와는 다섯 번 넘게 공연을 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브람스의 연가곡 ‘옛사랑’을 함께 녹음했죠. 이번 공연도 영화 한 편을 보듯 온라인 관객들이 몰입하도록 꾸렸습니다.”

여름 더위가 채 가시기 전에 ‘겨울 나그네’를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뭘까. “곡에 희망을 주는 가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 좋겠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으니 다시 일어서보면 어떨까’ 하고 묻는 겁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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