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경제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앨런 그린스펀(1987~2006년, 180㎝)은 4.9%, 벤 버냉키(2006~2014년, 173㎝) 때는 1.8%로 평균금리를 떨어뜨렸다. 역대 최단신(152㎝)인 재닛 옐런(2014~2018년)은 0.24%로 끌어내렸다. 금융위기 후유증을 달래느라 ‘제로(0)’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낮춘 결과다. ‘키와 금리의 상관관계 이론’은 제롬 파월(182㎝)이 2년 전 취임하면서 깨졌다. 취임 직후 기준금리를 연 2.5%로 끌어올렸을 때만 해도 ‘혹시나’ 싶었지만 지난 3월 ‘제로’로 되돌리면서다.
진지하게 짚어야 할 금리(통화)정책을 희화화(化)했다고 나무랄 수 없는 상황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Fed는 ‘평균 물가안정 목표’라는 것을 도입해 물가가 일정 수준(2%)을 넘어서더라도 제로금리를 유지하며 돈을 계속 풀겠다고 엊그제 발표했다. ‘물가안정을 통한 통화가치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전통 책무와 결별하겠다는 선언이다. 코로나 사태 여파로 경제가 수렁에 빠져 ‘경기 부양 우선’으로 방향을 튼 것이라지만 논란이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영원한 저금리(Low Rates Forever!)’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평균’이라는 모호한 기준 아래 Fed가 금리를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을 큰 문제로 꼽았다.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까지 더해질 경우 저금리가 마냥 지속되고, 금리가 ‘화폐의 가격신호’ 기능을 상실하면서 심각한 부작용이 빚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세계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Fed의 ‘탈선’을 경고하는 지적이 나온 지는 꽤 됐다. 버냉키와 옐런 시절 ‘금융위기 진화’를 내세워 달러를 마구 찍어내고서는, 위기가 일단락된 뒤에도 통화정책 정상화를 외면해 시장경제를 왜곡했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무더기로 쏟아낸 통화는 주식시장과 회사채시장은 물론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시장 거품을 한껏 키워 자산가들 좋은 일만 시켰다는 것이다. 다수 봉급생활자와 기업가가 그 비용을 치렀고, 그로 인한 불평등 확대와 근로사기 저하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문제로 확산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6월 렌터카회사 허츠 등 부도난 기업들의 주가가 Fed의 직접적인 회생자금 지원 덕분에 갑자기 치솟았을 때 “중앙은행이 타락했다”는 지적은 절정에 달했다. Fed가 기업들에 푼 3조달러가 ‘회생불능’ 판정을 받은 허츠와 JC페니 등 좀비기업에까지 흘러들었다. 그 결과 10센트에도 못 미쳤던 허츠 주가가 1주일 새 5달러로 솟구치는 등 투기 광풍이 일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연방부활제도이사회(Federal Resurrection Board)’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Fed가 좀비기업들까지 마구잡이로 되살려 자본주의 생명줄인 가격신호와 시장생태계를 왜곡하고 훼손하는 죄악을 저질렀다고 개탄했다. 마켓워치는 “통화가치와 금융시장의 ‘최종 수호자(last resort)’여야 할 중앙은행이 ‘최초 대부자(first lender)’로 전락했다”고 맹공격했다.
Fed에 쏟아지고 있는 비판은 한국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은행은 ‘탈선’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코로나 사태로 경제 타격이 본격화되자 한은도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인 연 0.5%로 끌어내렸고, 발권력으로 8조원을 찍어내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기업들의 회사채까지 사들이는 직접 지원에 나섰다. ‘중앙은행의 본령을 지키고 있는 건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점에서 Fed와 다를 게 없다. 결정적인 차이도 있다. 미국은 투자, 생산, 소비 등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해 시장 활력을 최대한 받쳐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정부가 먼저 해야 할 게 많다. 그 일에 눈감은 채 한은에 온갖 짐을 떠맡기고 있는 것, 그게 한국이 자초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다.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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