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아시아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CASE) 4대 회장에 취임한 김형순 인하대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65·사진)는 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편집 능력이 크게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CASE는 아시아 지역 학계의 학술지 편집 능력 제고를 위해 2014년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KCSE)가 주도해 세운 학술단체다. CASE엔 아시아 10여 개국에서 약 400명의 학자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 회장은 KCSE와 CASE 설립을 주도했다.
학술지에서 편집이란 논문을 투고받아 그 연구의 성과를 심사하고, 학술지에 싣기로 채택한 원고를 출판 규정에 맞춰 편집해 출판·배포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을 세분화하면 투고와 심사까지의 단계는 학술편집, 이후의 단계는 원고편집 혹은 출판작업이라고 부른다.
김 회장은 “세계의 학문 패권을 이끌고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학술편집과 출판 단계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며 “한국 및 아시아 지역 학계에선 편집과 출판 작업을 분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출판 단계의 전문성이 크게 떨어지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학회, 대학연구소 등 연구기관이 심사와 같은 학술적 역할을 넘어 출판까지 스스로 하려다 보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출판업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특히 학술지의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출판 영역의 전문성이 더 크게 요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학술지의 약 50%를 발행하는 4대 상업 출판사 엘제비어, 스프링거 네이처, 와일리, 테일러&프랜시스는 논문 전문을 웹페이지에 싣는 동시에 프레젠테이션 자료와 같은 다양한 시각자료로 논문을 소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영세하고 전문성이 없어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출판업계의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 김 회장은 “전문적인 편집 작업을 거친 학술지의 논문과 그렇지 않은 논문은 똑같은 연구 성과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인용횟수 등 논문평가 지표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e-저널이 처음 등장한 때가 1999년으로, 이미 20년 전부터 학계의 생태계가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며 “이런 흐름에 우리가 이제라도 잘 대응하면 살아남을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학계가 침체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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