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식당. 출입문 앞에 마련된 탁자에는 수많은 고객들의 이름과 휴대전화번호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수기출입명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출입명부를 관리하는 직원이 따로 없어 마음만 먹으면 사진을 찍거나, 몰래 가져갈 수도 있었다. 같은 날 서울 중구의 한 카페도 상황은 비슷했다. 계산대 한편에 놓인 수기출입명부를 통해 이날 카페를 방문한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었다.
수도권 지역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적용으로 출입명부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방문자가 직접 손으로 기록하는 수기출입명부는 명확한 관리 규정이 없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30일부터 수도권 지역은 영화관과 오락실 등 다중이용시설을 비롯해 모든 식당과 프랜차이즈 카페도 출입명부를 의무적으로 작성하고 있다. 규모가 큰 식당이나 영화관 등은 대부분 QR코드 인식 장치를 마련해 전자출입명부를 운영한다. 전자출입명부는 개인정보를 암호화해 보관하다가 4주 뒤면 자동으로 폐기해 상대적으로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적다.
하지만 QR코드 인식 장치를 설치할 여력이 없거나,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의 방문이 많은 영세한 식당 등은 수기출입명부를 가게에 비치해놓고 방문자가 알아서 작성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수기출입명부의 경우 같은 페이지에 여러 사람이 연이어 기록하다보니 먼저 방문한 이들의 개인정보가 다른 이들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수기출입명부의 폐기도 문제다. 수기출입명부도 전자출입명부와 마찬가지로 4주 뒤에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폐기 여부를 보건 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확인하지 않고 있다. 업주가 출입명부에 기록된 전화번호를 마케팅에 활용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출입명부를 분실하거나 제대로 폐기하지 않을 경우 범죄에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기출입명부 관리에 대한 불안으로 일부러 전화번호나 이름을 틀리게 적는 이들도 있다. 경기 성남에 사는 박모씨(35)는 "전화번호가 다른 사람에게 공개되는 것이 불쾌해 보통 끝에 두 자리를 다른 숫자로 적는다"고 말했다. 업주가 일일이 신분증을 대조하고, 전화를 걸어보지 않는 이상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수기출입명부는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행법상 방문자가 출입명부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업주가 출입명부를 분실해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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