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반정부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지난달 갑작스럽게 쓰러진 것은 신경작용제 '노비촉(Novichok)'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독일 정부가 2일(현지시간) 밝혔다.
노비촉은 냉전시대 말기 옛 소련이 개발한 물질로 일본 지하철 테러의 사린가스나 김정남 암살사건의 VX 등 다른 신경작용제보다 더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이 소개했다.
신체에 노출되면 신경세포 간 소통에 지장을 줘 호흡 정지, 심장마비, 장기 손상 등을 초래한다. 중독 증상으론 호흡 곤란, 근육통, 구토, 실금(대소변을 참지 못하는 상태) 등이 있다. 다만 노비촉 중독으로 사망해도 심장마비에 따른 사망 사례와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NYT는 설명했다.
노비촉은 운반할 땐 두 부분으로 분리했다가, 투여 직전에 결합해 액체 형태로 만들 수 있어 추적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동안 러시아 당국이 노비촉 공격을 정확히 얼마나 자주 감행했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노비촉이 세간에 알려진 건 1990대 초 옛 소련 해체 후 과거 소련에서 화학무기 제조에 관여한 과학자들이 이에 관해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면서다. 1992년에 한 러시아 과학자는 현지 매체에 자신이 1987년에 실수로 노비촉에 노출돼 근육과 장기가 손상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 얼마 뒤 사망했다.
노비촉 공격이 감행된 최초의 사례는 1995년 저명한 러시아 사업가 이반 키베리디의 독살 사건으로 추정된다. 당시 러시아 당국은 키베리디가 카드뮴에 중독됐다고 밝혔지만, 이후 러시아 매체들은 노비촉 중독이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한동안 노비촉에 관한 소식은 들리지 않다가 2018년 초 영국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이중간첩 독살 미수 사건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지며 다시 주목받았다.
당시 영국 솔즈베리의 쇼핑몰에서 러시아 출신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 율리야가 노비촉 중독 중세로 쓰러졌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하고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했다. 러시아는 관련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히는 나발니는 지난달 20일 러시아 국내선 기내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시베리아 옴스크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독일의 한 시민단체는 나발니가 독일에서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항공편을 보냈다. 나발니는 이를 통해 지난 22일 베를린 샤리테 병원에 도착해 치료받고 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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