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공공의료 강화의 일환으로 추진한 핵심 정책인 의대 정원 증원과 국립공공의료보건대학원(공공의대) 설립 추진을 중단하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안정된 이후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논의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관련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사실상 의료계에 백기투항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과 대한의사협회는 4일 서울 여의도동 민주당 당사에서 이런 내용의 '대한의사협회-더불어민주당 정책협약 이행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 5개항 가운데 3개항에 민주당의 이행사항이 담겼다.
우선 민주당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은 코로나19 확산이 안정화 될 때까지 관련 논의를 중단한다"며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협의체를 구성하여 법안을 중심으로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논의하기로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논의 중에는 관련 입법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따라 2022년 입시부터 10년 동안 4000명의 의사를 증원하기로 한 정부·여당의 계획은 사실상 무기 연기됐다. 또 김성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공공의대설립법도 추진이 중단된다.
민주당은 "공공보건의료기관의 경쟁력 확보와 의료의 질 개선을 위하여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도록 노력한다"고도 약속했다. 이어 "대한전공의협의회(대한의사협회 산하단체)의 요구안을 바탕으로 전공의특별법 등 관련 법안 제·개정 등을 통해 전공의 수련 환경 및 전임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방안을 마련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코로나19 사태 속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계 달래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의료계는 이날 오전 9시30분 파업을 철회했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모든 사항을 감안해 균형 있게 추진할 내용을 담았다"며 "이 협약이 최대한 지켜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의료계와의 대치에서 사실상 완패한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의료계와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정책을 추진했다는 비판을 수용한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정부의 일방적 정책 강행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며 "미리 사전에 대한의사협회와 충분한 사전협의를 거치고 정책 추진했더라면 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번 과정을 통해서 정부·여당은 정책 관련된 과제를 안게 됐다"며 "민주당은 의협과의 합의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 국가고시의 우려가 해소되고 정상화 되기를 바란다"며 "전공의 고발의 문제도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의료계를 향해 "코로나19가 안정화되고 그 이후 완전히 퇴치될 때까지 함께 대처해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께 거듭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 전해드린다"며 "이번 일을 교훈 삼아서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세밀하게 헤아리는 민주당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향후 의료계와의 합의를 둘러싸고 민주당 안팎에서는 파열음이 예상된다. 공공의대설립법을 대표발의한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오랫동안 논의해 온 결과를 법안에 담았지만, 더 좋은 방안이 있다고 하면 법안을 심의하면서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겠다"면서도 법안 철회의 뜻은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도 "공공의료 강화 방향을 철회한 것은 아니다"라며 "그 방향으로 가되 보완할 것이 없는지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여당 내 호남 의원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구가 호남인 한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협상파와 강경파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에둘러 밝혔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 및 시민단체는 이날 오전 11시 "의협과 정부의 공공의료 포기 밀실 거래 규탄한다"며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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