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셀러’ 그랜저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돌풍 속에서도 지난달 월 판매량 1위 자리를 지켰다. 연 누적 판매량도 8개월 만에 10만대를 돌파하면서 국내 신기록을 세웠다. 5060세대가 주력이었던 그랜저가 3040세대 소비자까지 사로잡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가다.
◆‘고급차’ 그랜저의 34년 역사
그랜저의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7월 출시된 1세대 그랜저는 ‘L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됐다. 각진 모양의 디자인으로 ‘각(角) 그랜저’로 불리기도 했다. 한동안 그랜저는 '부의 상징' 중 하나였다. 1세대 그랜저는 국산차 최초의 전자제어식 4단 자동변속기, 6기통 엔진 등을 앞세워 1990년대 초까지 9만2571대가 판매됐다. 지금도 1세대 그랜저는 높은 소장가치를 가진 ‘올드 카’로 여겨져 수백만원대에 거래된다.1992년 출시된 2세대 그랜저는 각진 차체를 완만한 곡선으로 탈바꿈하고 유럽풍의 중후한 디자인을 강조했다. 운전석 에어백, 능동형 안전장치(TCS), 룸미러 등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안전장치와 편의사양을 국산차 중 최초로 적용해 누적 판매량 16만4927대를 기록했다.
6년만에 나온 3세대 그랜저(그랜저 XG)는 현대차가 미쓰비시의 도움 없이 독자 개발에 나선 첫 그랜저다. 그랜저로는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돼 외국에 ‘현대차 그랜저’를 알린 모델이기도 하다. 3세대의 부분변경 모델 ‘뉴 XG 그랜저’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선수단에게 증정돼 이목을 끌기도 했다. 출시 후 총 31만1251대가 팔렸다.
4세대 ‘그랜저 TG’는 본격적으로 그랜저의 전성기를 열었다.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6단 자동변속기, 블루투스 핸즈프리, 에코 드라이빙 시스템 등 ‘고품격 프리미엄 세단’에 걸맞는 기술을 적용했다. 4세대의 인기에 힘입어 그랜저는 2006년 한 해에만 판매량 12만대를 기록해 처음으로 ‘10만대 돌파’에 성공했다. 개발기간만 3년 6개월이 걸린 5세대 그랜저(그랜저 HG)도 2011~2015년 그랜저가 꾸준히 10만대의 연간 판매량을 내는 데 일조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내수 ‘왕좌’
2016년 11월부터 판매된 6세대(IG) 모델은 그랜저의 새 역사를 썼다. 6세대 그랜저가 본격적으로 팔린 2017년 사상 처음으로 국내 판매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그 전엔 쏘나타와 아반떼 등이 1위 자리를 나눠가졌다. 그랜저는 2017년 이후 한 해도 국내 판매 1위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올해도 그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6세대 부분변경 모델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형 그랜저는 전장(차체 길이)를 60㎜, 휠베이스(앞뒤 바퀴축 사이 간격)를 40㎜ 늘려 내부 공간을 극대화하고 외장·내장 디자인에서 역동성을 강조했다. 연비도 16㎞/ℓ로 준대형 세단의 단점인 연료 효율성도 개선했다. 그랜저는 지난 1~8월 누적 판매량 10만220대를 기록해 국내 자동차 역사상 최단 시간 내 ‘연간 10만 클럽’에 입성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성시대 속에서도 10개월 연속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에 오르기도 했다.
그랜저의 성공은 고객 저변을 넓힌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사장님 차’로 불렸던 그랜저는 3040세대 소비자를 겨냥하면서 고객층을 확대하는 추세다. 30~40대가 전체 고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지난해 신형 그랜저 출시 직후 약 두 달간 진행한 사전계약에서 40대(31%)가 50대(29%)를 제치고 가장 많이 산 연령대로 꼽히기도 했다.
신형 그랜저의 돌풍에 힘입어 지난달까지 그랜저의 누적 판매량은 243만대를 넘어섰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신형 그랜저의 인기가 계속 된다면 올해 그랜저 판매량이 처음으로 15만대를 넘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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