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경제의 수혜주로 꼽혀온 대형 기술주가 급락장을 이끌었다. 애플(-8.01%) 마이크로소프트(-6.19%) 알파벳(구글 모회사·-5.12%) 아마존(-4.63%) 등이 직격탄을 맞았다. 화상회의 서비스 회사인 줌의 주가가 9.97% 하락하고, 엔비디아(-9.28%) 테슬라(-9.02%) 등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1800억달러 증발했다. 올 들어 여섯 배 가까이 뛰면서 지난달 31일 최고점(498.32달러)을 찍었던 테슬라 주가도 9.02% 급락했다. 테슬라는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매집(약 4조원)한 해외 종목이다.
월가 전문가들은 급락 원인을 찾는 데 분주했다. 갑자기 시장을 얼어붙게 할 만큼 돌출한 악재가 없어서다.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8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6.9로, 전달(58.1)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지난주 13만 명 감소했다는 희소식도 나왔다. 소비와 고용에서 엇갈린 지표가 발표된 만큼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투자자문사 인디펜던트어드바이저의 크리스 자카렐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투매를 촉발할 뚜렷한 원인이 없었기 때문에 차익 실현을 위한 조정 정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옵션거래와 관련된 컴퓨터 알고리즘 매매에 따라 자동으로 쏟아져 나온 매물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렸다. 강세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시 후퇴일 뿐이란 시각과 거품 붕괴의 전조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에드 컨 QMA 수석투자전략가는 CNBC 인터뷰에서 “하루에 3~5% 급등하기도 했던 만큼 자연스럽고 건강한 조정”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 나틱시스의 에스티 드웨크 매니저는 “어떤 자산도 일직선으로 오르기만 하진 않는다”며 “기술 기업들의 뛰어난 수익성이 바뀌지 않은 만큼 이번 정도의 하락은 오히려 나쁘지 않다”고 했다.
반면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자문은 “유동성에만 초점을 맞췄던 시장이 펀더멘털을 직시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며 “10% 정도의 급락은 언제든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뒷걸음질쳐 온 실물경제 지표가 증시에 본격 반영되면 더 큰 하락장을 이끌 수 있다는 경고다. S&P500 기업들의 올해 실적은 작년 대비 평균 2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애플 아마존 MS 알파벳 페이스북 등 빅테크 5개 기업의 시가총액 합이 약 8조달러로, 주가수익배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수익성 지표)은 44배에 달한다. 이는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당시 상위 5개 기업 PER(50배)에 근접했다는 게 영국 경제분석 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분석이다. 스티브 마소카 웨드부시증권 이사는 “수개월 동안 기술주에 과도하게 투자자가 몰린 만큼 바람 방향만 바뀌면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것”이라고 거품 붕괴론에 힘을 실었다.
낙관론자이든 비관론자이든 당분간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백신, 11월 미국 대선 등 증시에 영향을 끼칠 사안이 워낙 많아서다. 뉴욕 투자회사인 베세머트러스트의 홀리 맥도널드 CIO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올가을엔 증시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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