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5세대 통신(5G) 스마트폰 시장에 팔을 걷어 붙였다. 빠르면 다음달 공개할 신형 아이폰12를 통해서다. 업계에선 역대급 디자인에 가격까지 낮춰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화웨이 등 경쟁사들의 5G폰 시장까지 잠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부품공급사들에 4가지 시리즈로 나올 아이폰12를 연내 7500만~8000만대까지 생산해달라는 '주문 계획'을 넣었다. 공급사들은 현재 아이폰12 생산라인을 구축 중이다. 전작인 아이폰11의 지난해 4분기 출햐량이 7290만대(추정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19 국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출하량 목표를 더 올려잡은 셈이다.
대만 IT전문매체 디지타임스는 "새로운 아이폰12 시리즈가 연내 약 6800만대가량이 출하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8000만대 출하 목표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점을 감안하면 매우 공격적인 행보"라며 "이는 글로벌 5G폰의 상용화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 시리즈가 연 1000만대가량을 판매하는 상황에서 한 분기(3개월) 만에 8000만대까지 출하 목표를 세운 것은 업계에선 적지 않은 '공격적인 행보'로 판단하고 있다.
애플은 내년을 본격적인 5G폰 시장이 만개하는 해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는 5G폰 시장에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배수진을 치겠다는 전략이다. 다음 달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폰12 시리즈는 △5.4 인치 아이폰12 △6.1인치 아이폰12 맥스 △6.1인치 아이폰12 프로 △6.7인치 아이폰12 프로 맥스 등 4종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모두 5G를 지원하고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한다.
그동안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가전략'으로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던 애플이 이번에는 라인업을 크기와 사양·디자인 등에 따라 세분화해 다양한 가격대 수요를 공략하겠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아이폰11 시리즈는 사상 처음으로 전작 대비 가격을 인하해 출시했다. 경쟁사 대비 5G폰 출시가 1년 이상 늦은 애플 입장에서 그동안 고가 전략을 유지했던 아이폰의 가격을 인하해 소비자들이 삼성전자나 화웨이 5G폰으로 넘어가는 것을 최대한 지체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애플은 이번에 일부 모델에 24기가헤르츠(GHz) 이상의 고주파수 대역인 '밀리미터파(mmWave)'까지 지원하는 제품을 선보여 경쟁사와 차별화도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5G 이동통신은 6GHz 이하의 저주파수 대역뿐만 아니라 고주파수인 밀리미터파 대역을 지원한다. 다만 5G 이동통신이 최대 속도인 20기가비피에스(Gbps)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밀리미터파 대역을 지원해야 한다. 최근 국내 5G폰 사용자들이 '무늬만 5G' 아니냐는 불만을 쏟아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밀리미터파 대역은 커버리지가 짧아 서비스를 위해서는 더 많은 기지국이 필요하며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5G 스마트폰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기기 제조사들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시장이다. 점점 스마트폰 이용 트렌드가 동영상 등 고사양 중심으로 변하고 있어서다.
5G폰 시장에서 애플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이유는 삼성전자의 행보가 공격적이어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가 글로벌 5G폰 시장에서 43%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화웨이는 34%로 2위다. LG전자(10%)와 비보(5%)가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5G폰 시장에서 점유율 74%를 기록했다.
특히 스마트폰 시장에서 최근 삼성전자의 기세는 무섭다. 글로벌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 7월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 총 1억620만대의 기기가 출하됐는데 이중 삼성전자가 4분의 1가량인 2600만대를 출하했다. 이는 애플과 화웨이 합산 수치와 비슷한 규모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아이폰12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출시가 한 달 가량 지연될 것으로 보이면서 삼성전자는 3분기 판매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판매대수뿐만 아니라 폼팩터(특정기기 형태)에서도 삼성전자는 경쟁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보급형→고급형→폴더블로 이어지는 라인업에서 모두 5G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시장조사업체인 오범(OVUM)에 따르면 올해 2억5000만대가량 출하될 것으로 예상되는 5G폰은 내년에는 6억대로 규모가 급증할 전망이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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