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 양대 토후국 중 하나인 두바이가 자국 내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을 그만 둔 뒤에도 두바이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은퇴 비자’를 내놨다.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두바이에서 빠져나가자 내수가 휘청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두바이 정부는 지난 3일(현지시간)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현지언론 아랍뉴스에 따르면 UAE에서 처음으로 시행되는 은퇴자 대상 비자 제도다. 그간 부유한 중동 산유국 대다수는 취업 상태를 증명한 외국인에만 한시적 거주 비자를 허용해왔다. UAE는 앞서 2018년 외국인 은퇴자 대상 장기 거주 비자를 발급할 수 있도록 이민법을 개정했다.
두바이 은퇴 비자는 기존 두바이에 거주 중인 55세 이상 외국인이 대상이다. 월 소득 2만디르함(약 650만원), 저축액 100만디르함(약 3억2000만원), 두바이에 200만디르함(약 6억4000만원)어치 부동산 소유 등 세가지 조건 중 하나를 만족하면 신청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UAE에서 일자리 감소세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빨라지는 와중에 나온 조치”라고 지적했다. 두바이 민간 경제 비중 90%에 달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두바이에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유인책이라는 분석이다.
두바이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 이탈로 부동산을 비롯한 내수 시장 침체가 빨라지고 있다. 두바이는 석유 무역과 관광이 주요 산업인 나라다. 코로나19 사태로 석유제품과 여행 수요가 확 끊겨 에너지·관광산업에서 감원이 이어지자 두바이에 체류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자국으로 돌아갔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빠져나가자 두바이는 주택 수요가 크게 줄고 디플레이션이 심해지는 분위기다. 지난 2일 블룸버그 글로벌이코노미워치는 조사한 80여개국 중 카타르, 바레인, UAE의 디플레이션율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두바이 당국은 이번 조치가 자국 여행 산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퇴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두바이에 정착할 경우 가족과 친구들의 두바이 방문도 늘 것이라는 설명이다. 헬랄 사이드 알 마리 두바이 관광국장은 “은퇴 비자는 두바이를 세계적 도시로 만들기 위한 제도”라며 “은퇴자 대상 관광 시장을 키우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두바이 당국의 기대만큼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블룸버그통신은 “은퇴한 연금 수급자들이 보기에 두바이는 물가가 비싼 지역”이라며 “생활비와 의료비가 저렴한 스페인, 코스타리카, 말레이시아 등 기존 은퇴 인기 지역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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