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학자 이영석 광주대 명예교수(사진)는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문 에세이 《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를 펴냈다. 그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선진국의 공공성이 코로나19 앞에서 무너져내렸다”며 “19세기 근대국가를 형성한 서구 세계가 낯선 바이러스에 휘청이는 모습을 보며 코로나19가 세계 역사의 새 기준점이 되리라 봤다”고 말했다. “현대 위생학과 검역은 19세기 전염병 대응 과정에 맞춰 표준화된 겁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침도 사실상 19세기 방식에 머물러 있죠. 21세기에 출현한 코로나19에 대처할 매뉴얼은 아직 없습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는 훗날 시간이 많이 흘러도 ‘역사 속 한 줄’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코로나19 뒤에 또 다른 형태의 바이러스가 간헐적으로 인간사회를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는 지속가능한 지구 문명을 위해선 세계적으로 인류가 욕구를 줄이고, 저소비와 저에너지를 생활화해야 한다고 일깨웠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위기가 한국인들에게 미친 긍정적인 각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민의 노력으로 코로나19의 더 큰 확산을 제어하는 데 성공한 나라”라며 “한국의 이번 경험이 새로운 국제 공조체계 구축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동안 한국인의 의식구조엔 ‘선진국’이란 비교 대상을 설정하는 의식이 깃들어 있었다”며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의 현재를 새롭게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가 한국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선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성공한다는 게 국가 발전의 목표였어요. 국내 난제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으며 분노할 때 ‘선진국은 이렇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나면 우리가 믿었던 모든 것을 다시 돌아봐야 해요. 그것이 바이러스와 공생하는 길이겠죠.”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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