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5대 시중은행에서만 42만 건 이상의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이 새로 발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데다 주택·주식시장이 달아오르면서 ‘우선 만들어놓고 보자’는 식의 계좌 개설이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신규 발급된 개인 마이너스통장은 42만8178건을 기록했다. 작년 1~8월(35만9101건) 대비 19.2% 늘어났다. 은행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이 한 사람에 1~2개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최소 30만 명이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신청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 마이너스통장에서 실제 사용한 돈은 44조75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42조4000억원)보다 5.5%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당장 돈이 필요해서 마이너스통장을 열어 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은 언제든지 자금을 동원할 수 있고 이자도 매력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주택과 주식시장에서 기회를 엿보는 사람과 경기 악화 등에 대비하려는 사람들이 미리 마이너스통장을 마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씨(33)는 지난달 처음으로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을 개설했다. 당장 ‘급전’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재정 상황이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주변에서 무급휴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뭐라도 준비해둬야 한다는 불안감이 들었다”며 “지금처럼 조건이 좋을 때 마이너스통장을 열어놓고 생활비로 쓰거나 증시에 좋은 투자 기회가 있을 때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올 들어 은행권에서 마이너스통장 개설이 크게 늘어난 것은 박씨처럼 ‘만약’을 대비하려는 수요가 몰린 탓이라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코로나19 사태와 부동산 대출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금융소비자들의 불안심리가 극대화됐다는 얘기다. 유례없이 낮아진 금리와 개인투자자들의 주식투자 열풍도 한몫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6월 부동산 시장 규제 이후 마이너스통장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식 대출을 해서라도 내 집 마련을 하려는 분위기가 확산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금융당국은 신용대출로 집을 사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은행의 일선 영업창구에서 돈의 사용처를 일일이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불어난 마이너스통장 발급과 빚에 의존하는 사회 분위기가 향후 ‘부메랑’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이미 신용대출이 급증한 상황에서 각 개인이 손쉽게 대출 규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5대 은행의 개인신용대출 총잔액은 124조2747억원이었다. 7월 말보다 4조755억원 불어났다. 개인들이 이미 발급받은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고려하면 여기에 추가로 수십조원의 대출 여력이 남아 있는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너도나도 빚을 끌어다 부동산이나 주식 시장에 넣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가계 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소람/송영찬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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