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등기 우편물을 고의로 수차례 받지 않았을 경우, 우편물이 사실상 수신자에게 도달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A씨가 주택재개발정비사업 B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손실보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2012년 안양시의 한 주택재개발구역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A씨는 조합원 자격을 얻었지만 분양을 신청하지 않았다. 현금 청산 대상자가 된 A씨는 부동산 소유권을 넘기는 대신 보상금을 받으려 했으나, B조합 측과 보상금 액수를 둘러싼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A씨는 지방토지수용위원회를 통해 보상금을 책정하는 ‘수용재결’을 청구했다. 조합은 현금 청산 대상자의 수용재결 청구를 받고도, 60일 이내에 수용재결을 토지수용위에 신청하지 않으면 지연가산금을 물어줘야 한다.
A씨는 2016년 2~3월 배달증명이 가능한 등기우편으로 조합 측에 수용재결 청구서를 세차례 보냈다. 하지만 모두 ‘수취 거절’로 반송됐다. B조합의 수용재결 신청은 2017년 1월이 돼서야 이뤄졌다. 그러자 A씨는 B조합이 부당하게 수용재결 신청을 지연시켜 손해를 입었다며 지연가산금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1·2심은 B조합 측 손을 들어줬다. A씨가 등기를 보낼 때 본인의 이름을 적시하지 않고 법률 대리인 이름만 표시한 게 화근이었다. 우편물에 A씨의 수용재결 청구서가 들어있을 것이라 예상을 못해 반송했을 뿐, 부당하게 수용재결을 지연시킨 게 아니라는 B조합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대법원은 B조합이 수취를 거절했어도 A씨의 의사표시가 도달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당시 B조합은 (A씨를 비롯한) 탈퇴 조합원들에게 현금청산금을 지급하지 못했고, 보상협의도 성립하지 못했다”며 “그 무렵부터는 A씨를 비롯한 탈퇴 조합원들이 수용 여부 및 정당한 보상금액을 확정하기 위해 조합에 재결신청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씨가 보낸 우편물들은 발송인이 법무법인이고 일반 우편물이 아니라 배당증명 방식의 우편물이었으므로 사회통념상 중요한 권리행사를 위한 것이었음을 넉넉히 알 수 있다”며 “상대방이 부당하게 등기 취급 우편물 수취를 거부해 발신자 의사표시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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