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보다 싸다" 日의 저가공세…철강업계 '시련의 용광로'

입력 2020-09-08 17:11   수정 2020-09-0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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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재팬’ 운동으로 일본산 제품의 국내 판매가 급감했지만 예외인 곳도 있다. 최근 국내 철강시장에는 중국산보다 싼 일본산 철강이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있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철강 수요 감소와 철광석 가격 급등으로 이중고를 겪는 철강업계에 근심거리가 또 늘었다. 저렴한 수입 철강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철강업체들의 하반기 가격 인상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재고 쌓인 일본의 ‘덤핑’ 공세
8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열연 유통가격은 지난 4월 t당 3427위안에서 이달 초 t당 4098위안으로 19.6% 올랐다. 같은 기간 국내 열연 유통가격은 6.3% 상승하는 데 그쳤다. 통상 중국 철강가격이 오르면 국내 철강가격도 동반 상승했지만 올해는 다른 흐름이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일본산 철강재가 국내로 ‘덤핑’ 수준의 가격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국내 철강가격 상승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국내에 수입된 일본산 철강은 약 137만t으로 전체 수입량의 37.5%를 차지했다. 작년보다 7.1%포인트 늘어났다. 열연 강판은 일본산 비중이 53.9%에 달했다.

올해 일본산 열연 강판의 평균 수입 가격은 t당 477달러(약 57만원) 수준으로 작년보다 14.0% 하락했다. t당 488달러인 중국산 열연 강판보다 낮은 수준이다. t당 68만원인 국내산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다.

올해 일본산 철강 가격이 급락한 것은 7월 열릴 예정이던 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로 연기됐기 때문이다. 올림픽 관련 시설들의 공사가 중단되면서 철강 재고가 급격히 늘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자동차업계의 철강 수요마저 줄었다. 일본 내수 철강 소비량은 올해 2분기 전년 동기보다 21.9% 급감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 제품은 녹이 슬기 때문에 가공하지 않으면 오래 보관하기 어렵다”며 “일본 철강사들이 가까운 한국시장에 재고를 팔아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 어쩔 수 없이 가격 내려
일본산 철강의 수요가 가장 높은 곳은 조선업계다.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수주 급감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조선사들은 저렴한 일본산 후판 사용량을 늘리고 있다. 하반기 자동차와 조선업체들을 대상으로 철강 가격을 인상하려던 철강사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전방업체들은 ‘내 코가 석 자’라며 일본산 철강을 가격 협상 카드로 쓰고 있다.

포스코는 가격을 올리기는커녕 하반기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에 납품하는 후판 가격을 인하하기로 했다. 현대제철은 상반기 협상에서 먼저 후판 제품 가격을 t당 3만원 인하했다. 공식적으론 “조선업계와의 고통 분담 차원에서 후판가격을 인하했다”고 밝혔지만 속내는 수입 철강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조선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철강사들은 지난 몇 년간 후판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며 “국내 조선사에 서운한 감정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제품 가격은 올리지 못하는데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 3일 기준 철광석 가격은 t당 130.8달러로 6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올 2월 이후 58.7% 급등했다. 최대 구매처인 중국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쓰면서 철강 생산 규모가 늘었기 때문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중국 철강업체들의 주력 제품은 철근 등 건설자재”라며 “자동차 강판의 시황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중저가 제품과 원재료 값만 오르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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