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은 오는 12월 1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로 정식 데뷔 무대를 갖는다고 9일 밝혔다. 이날 공연에서 그는 협연자이자 지휘자로 KBS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춘다.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2번',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을 들려준다.
김선욱은 2006년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했다. 아시아인으로 처음 받는 우승 트로피였다. 2008년엔 영국 왕립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나 지휘 석사 과정을 2013년 마쳤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휘봉을 정식으로 손에 쥔 무대는 없었다.
9일 서면을 통해 만난 김선욱은 지휘를 앞두고 소감을 밝혔다. "피아노가 '작은 우주'라면 오케스트라는 '큰 우주'입니다. 피아노가 다른 악기보다 음역대도 넓고 화성을 이해하기 수월해 오케스트라 곡을 분석하는 데 도움됐습니다. 다만 피아노를 잘 친다고 지휘 실력이 좋다고는 할 수 없죠. 단원들과 함께하는 연주니까요"
지휘봉을 처음 거머쥔 그는 익숙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을 레퍼토리로 골랐다. "'에그몬트 서곡'과 브람스 교향곡 2번은 지휘를 배울 때 주로 연습했던 곡들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레퍼토리이기도 하죠. 관현악단이 뿜어내는 화음이 백미인 곡입니다. 지휘자로 경험이 쌓인다면 피아노로 칠 수 없는 다양한 오케스트라 곡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김선욱은 2015년 영국 본머스 상주 아티스트로 활동할 때 상임지휘자 키릴 카라비츠 제안으로 지휘봉을 잡아본 게 전부다. 그는 단상에 올라 앙코르곡이었던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파드되를 지휘했다. 김선욱은 당시를 회고했다. “공연에 앞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피아노로 연주해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였지만 행복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첫 경험이었죠,” 그는 코로나19가 없었다면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올해 4월 지휘자 데뷔 무대를 함께하려 했다.
피아니스트로 명망을 쌓았지만 김선욱은 언제가 지휘봉을 잡을 날을 고대했다. 그가 영국 왕립 음악원에 입학할 때 지휘자 정명훈과 김대진에게 추천서를 받았었다. “두 분 다 제 꿈을 잘 알고 계셔서 추천서를 부탁드렸어요. 옛날에 정명훈 선생님께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2번 스코어(악보)를 들고 찾아가 사인을 받았었는데 그때 ‘네가 이 곡을 언젠가 지휘할 날을 기대한다’라고 써주신 기억이 납니다.”
지휘봉을 잡기 앞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함께 처음으로 듀오 무대를 갖는다. 오는 12월 8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정경화&김선욱 듀오 리사이틀'이다. 두 사람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 "정경화 선생님의 오랜 팬입니다. 선생님이 발매한 음반을 들으며 자란 걸요. 이번에도 리허설을 할 때 선생님께서 음악에 있어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큰 그림을 그리시는 걸 보고 감명받았습니다."
다른 연주자들과의 합주도 중요하지만 김선욱에겐 숙제가 남았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 올해가 가기 전에 그가 남긴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이다. 애초 김선욱은 이번 주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30~32번) 공연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그의 전국 투어는 오는 12월로 연기됐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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