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로 국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를 발행한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대폭 낮춘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냉각됐던 채권시장이 진정된 시기에 발행에 나선 것이 조달비용 절감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성공적인 외화 조달에도 불구하고 채권시장에선 정부의 잦은 외평채 발행으로 이자 부담이 한층 커졌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1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15억달러(약 1조7800억원) 규모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위해 전날 진행한 수요예측(사전 청약)에 해외 318개 기관투자가가 약 100억달러(약 11조8000억원)의 매수주문을 넣었다. 유로로 발행되는 5년물(모집액 7억유로)에 55억유로(약 64억달러), 달러로 발행되는 10년물(6억2500만달러)에 36억달러씩 들어왔다. 미래에셋대우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스탠다드차타드증권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BNP파리바 JP모건이 발행 주관을 맡았다.
모집금액의 여섯 배가 넘는 투자수요가 몰린 덕분에 이번 외평채는 사상 최저금리로 발행된다. 5년물은 유로 미드스와프(MS) 대비 0.35%포인트 높은 연 -0.059%, 10년물은 미국 국채 대비 0.5%포인트 높은 연 1.198%로 결정됐다. 지금까지 마이너스 금리로 국채를 발행한 국가는 독일 덴마크 스웨덴 영국 등 유럽 국가와 일본 정도다. 한국 정부의 신용등급은 10개 투자적격등급 중 세 번째로 높은 AA(안정적)다.
글로벌 채권시장이 진정된 이후 조달에 나선 것이 낮은 금리로 외평채를 발행할 수 있었던 비결로 꼽힌다. 코로나19 사태가 대유행(팬데믹) 국면으로 치달은 3월까지만 해도 채권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이 외화채권 발행을 포기하거나 연기하는 일이 잇따랐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회사채까지 사들이기로 결정하는 등 전 세계 주요국이 강력한 유동성 공급정책을 꺼내들면서 외화채권 발행여건이 차츰 개선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 속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비롯해 두산인프라코어, GS칼텍스, 미래에셋대우 등 민간기업까지 차례로 외화채권 발행에 성공하면서 조달환경은 한층 더 나아졌다는 평가다.
흥행과는 별개로 이번 외평채 발행으로 정부의 빚 부담이 한층 커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발행이 완료되면 정부의 외평채 발행잔액은 약 9조7000억원에서 11조5000억원까지 불어난다. 13년 만에 최대규모다. 현재 약 3000억원에 달하는 외평채 연간 이자도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반면 외평채를 발행해 조성하는 외국환평형기금 수익률은 높이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외국환평형기금은 대부분 미국 국채 등 확정금리형 외화자산에 투자하도록 돼 있어서다. 최근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0.6%대 수준에 불과하다.
IB업계 관계자는 “4차 추경 재원 확보를 위해 대규모 국고채 발행이 예정된 가운데 외평채 이자 부담마저 커지고 있다”며 “그나마 국고채로 조달한 자금은 경기부양을 위해 쓸 수라도 있지만 외평채는 애초에 자금 사용목적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빚을 내서 외화 예금을 드는 거나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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