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독일에서 출간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나는 간호사입니다(I’m a nurse)》는 코로나19 최전선에 있는 의료 인력들의 현재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부제는 ‘간호사라는 나의 직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모든 것에도 불구하고(Warum ich meinen Beruf als Krankenschwester liebe-trotz allem)’다. 저자는 의료 현장의 심각한 인력 부족, 의료 인력 간의 차별과 부당한 대우, 상처와 트라우마 등과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정으로 지금의 힘겨운 상황을 버텨내고 있다고 말한다.
책을 쓴 프란치스카 뵐러는 2007년부터 프랑크푸르트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의 인스타그램 계정(@thefabulousfranzi) 팔로어는 15만 명이 넘는다. 음식, 패션, 쇼핑, 휴가 등 온갖 자랑거리로 가득한 인스타그램에 뵐러가 글을 올리기 시작한 날은 2017년 2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막 교대 근무를 마치고 수술복을 입은 채로 올린 지친 표정의 사진 한 장과 고된 하루를 표현한 푸념의 문장. 순식간에 ‘동료들’의 응원 댓글이 게시물에 올라왔다. 다양한 돌봄 현장에서 묵묵하게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던 동료들이 공감과 연대의 댓글을 통해 서로를 응원했다. 지금도 저자의 인스타그램에는 병원과 돌봄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올라오고 있다.
우리는 주로 ‘숫자’와 ‘통계’로 어떤 사실을 접하게 된다. 1인당 의사 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대비 의사 증가율, 인구 대비 간호사 수, 인구 대비 대형 병원 수 등 의료 인력이 얼마나 부족하고 또 어떤 고된 환경에서 일하는지 객관적인 사실을 접하며 그 세계를 대략 이해한다. 객관적인 통계와 숫자보다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가 일반 대중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이 책은 탄생부터 시작해 청소년기, 청년기, 중장년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인생의 긴 여정에 누군가의 돌봄으로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조산사, 간호사, 간병인 등의 봉사와 헌신으로 공동체가 든든히 지탱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 책은 자연스럽게 의료 현장의 불편한 현실을 고발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비인간적인 근무 조건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건강 의료 시스템으로 인해 돌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한계에 도달했고, 그들 또한 누군가의 돌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