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피해 기업 2분기 실적 들여다보는 신평사…무더기 신용 강등 '방아쇠' 당기나

입력 2020-09-11 17:05   수정 2020-09-12 01:4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충격을 받은 기업들의 유동성 압박이 심해질 전망이다. 신용평가사들이 그동안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신용등급 조정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어서다. 일부 기업은 금융회사에서 자금을 빌릴 때 약속한 ‘신용등급 유지’ 조건을 지키지 못해 즉시상환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분기 실적 바탕으로 조정 검토 시작
11일 증권가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등 신용평가 3사는 코로나19 피해가 큰 업종을 대상으로 신용등급 조정 검토 작업에 최근 착수했다. 한기평은 지난 10일 항공업과 면세업 관련 보고서를 내고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여부와 업황 변화를 주시하고, 연내 신용등급의 적정성을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신평은 7일 발표한 ‘신용 리뷰 포인트’ 보고서에서 “피해 기업의 하반기 등급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강등 압박이 큰 산업으로는 정유·자동차 및 부품·철강·디스플레이·호텔(면세)·항공·상영관·해운·유통업종을 제시했다.

신평사들의 등급 재검토는 그동안 미뤄왔던 무더기 강등 위험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평사들은 올 3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장기 재무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해 등급 조정에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다. 한진칼(BBB)과 대한항공(BBB+)은 3월 한기평으로부터 처음 ‘부정적 검토’ 평가를 받았으나 6월과 9월에는 두 차례 강등을 유보(부정적 검토 연장)받아 연초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방아쇠’ 발동 우려
신용등급 강등이 본격화할 경우 일부 취약업종 기업은 대규모 채무를 즉시 갚아야 하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금융회사와 차입 계약을 맺을 때 이자비용을 낮추려는 목적으로 신용등급 관련 특약 조항을 집어넣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등급 방아쇠(rating trigger)’로 불리는 이런 조항은 공모 채무증권이 아닌 경우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최근 두산중공업은 신용등급 강등(BBB-)에 따라 외국계 금융회사 대출 약 1800억원어치가 즉시상환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주요 기업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와 이랜드월드, 이랜드리테일의 일부 공모 채무증권도 이 같은 조항을 담고 있다. 대우건설과 포스코건설, 아시아나항공도 일부 유동화 채무(보증) 계약에 신용등급 유지 조건이 붙어 있다. ‘A2-’인 홈플러스는 등급이 한 단계만 더 떨어지면 2999억원의 임차보증금 유동화증권의 즉시상환 요구에 몰릴 수 있는 처지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등급 방아쇠 조항이 발동하면 동반 부도(크로스 디폴트) 조항으로 인해 다른 채무까지 즉시상환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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