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제주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가상의 ‘고고리섬’을 배경으로 한다. 1999년 봄, 열세 살 초등학생 이영초롱이 부모의 사업 실패로 인해 고고리섬에 보건소 의사로 일하는 고모에게 맡겨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침울한 나날을 보내던 영초롱은 어느 날 섬 둘레를 걷다 우연히 또래 여자 아이 고복자를 만난다. “녹아 버린 아이스크림도 다시 얼리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복자에게 영초롱은 “우리 집이 완전히 망해 버렸다”고 털어놓은 뒤 두 아이는 단짝이 된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의 갈등에 휘말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영초롱이 서울로 돌아간다.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가 된 영초롱은 법의 엄정한 언어에 회의를 느껴 법정에서 욕설을 쏟아낸다. 서귀포시 성산법원으로 징계성 인사발령을 받은 영초롱은 어린시절 헤어졌던 복자와 재회한다. 복자는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을 견디며 간호사로 근무하다 유산으로 아이를 잃은 뒤 같은 피해를 입은 간호사들과 산업재해 인정을 받고자 분투하던 중이었다. 어린 시절 낯선 섬 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복자의 상처를 조금씩 알게 된 영초롱. 이번만큼은 자신이 사건의 재판을 맡아 복자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기로 마음먹는다.
소설은 복자와 주변인들을 통해 강인한 생활력으로 삶을 책임지는 제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감화된 영초롱은 실패에 걸려 넘어졌던 마음을 다시금 일으켜 세운다.
소설은 ‘각자마다 겪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힘’이란 주제의식을 내밀히 보여준다. 인생의 수많은 실패는 결국 성공을 향한 과정이거나, 인생을 항해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 내야 하는 암초와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인물들이 겪는 실패는 살아가기 위한 움직임이 남긴 증거로서 위로받고 포용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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