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는 아키타현의 딸기 농가 출신이다. 고교 졸업 후 무작정 상경해 늦깎이로 학비가 가장 싼 호세이대 법학부에 입학했다. 최근에는 서민적인 면모를 부각하려 ‘고생 끝에 자수성가한 정치가’라는 이미지를 지나치게 과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은 부농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부농의 아들이라고 해도 세습 정치인이 많은 일본 국회에서 친족 가운데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는 스가가 본인의 실력으로 최고 지도자에 오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가 지역구인 이유도 1975년 요코하마시 중의원 의원이던 오코노기 히코사부로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기 때문이다. 중의원이 된 것은 1996년 10월 만 47세 때였다.
늦깎이지만 철저한 자기관리와 풍부한 인맥으로 중앙 정치무대에서 급성장했다. 매일 100회씩 복근 운동을 거르지 않고, 양복을 입은 채로 40분간 관저를 산책한다. 비상사태가 터지면 언제든 관저로 뛰어 들어와 브리핑을 하기 위한 준비다. 덕분에 70세가 넘도록 167㎝, 65㎏의 탄탄한 체구를 유지하고 있다. ‘일이 취미’라는 그는 매일 삼시 세끼를 정·관·재계 관계자와 함께 식사하며 정보를 수집한다. 술, 담배를 안 하지만 저녁 약속은 세 탕씩 뛴다고 한다. 인맥관리도 철저하다. 기자들이 메일을 보내면 폴더폰으로 전화를 걸어 정중하게 설명해 준다고 한다. 요미우리신문의 ‘인생안내’ 코너를 정독하는 것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파악하기 위해 빠뜨리지 않는 일과다.
20년 넘게 스가를 지원한 요코하마 상점가의 소바집 사장은 요미우리신문에 “골프를 치러 간 적이 있는데 공을 멀리 날리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또박또박 쳐서 점수를 관리하는 타입”이라며 “성격대로 경기 운영이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료는 지혜주머니이며 일본 관료는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싱크탱크다. 이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정치가의 수완”이라는 스가의 발언에서 그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