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 계획을 발표하자 야당인 국민의힘은 전 국민 대상 독감백신 무료 접종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민주당은 만 13세 이상 전 국민 4600만명에게 총 9280억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는데요. 이를 두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원내대책 회의에서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쓸 돈이라면 독감 백신을 접종하자고 한다"며 "(국민의힘은) 국민안전이나 건강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예결위 심사 과정서 조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독감백신 무료 접종을 하자는 국민의힘의 주장은 일견 그럴싸해 보입니다. 민주당은 통신이 '방역 필수재'라고 주장하지만, 건강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지 못한 상태에서 독감까지 대유행하면 의료 시스템이 견디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올해 전 국민 독감백신 접종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녹십자, SK케미칼 등 국내에서 독감백신을 생산하는 기업은 이미 올해 생산을 마무리한 상황입니다. 통상 독감백신은 8월까지 생산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국가출하승인을 통과한 뒤 공급됩니다. 독감이 유행하는 동절기 이전에 물량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 독감백신을 만들려고 해도 간단치 않습니다. 녹십자는 유정란(계란)으로 독감백신을 만들기 때문에 생산이 6개월가량 걸립니다. 세포 배양 방식으로 독감백신을 생산하는 SK케미칼의 경우 2~3개월이 걸리긴 하지만 기존에 잡아둔 생산일정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다국적 기업의 독감백신을 들여온다고 해도 비슷한 이유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독감백신 생산물량은 3000만명분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어린이·청소년, 임신부, 만 62세 이상 노인 등 1900만명은 무료 접종이 가능합니다. 국민의힘은 전 국민 접종 물량을 확보하기 어렵다면 우선 나머지 1100만명분을 무료로 돌리자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1100만명을 어떤 기준으로 선별하자는 걸까요? 주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부유하고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은 건강 상태가 좋은 경우가 많다"며 "우선 국가가 백신을 1100만명분이라도 사서 접종하자"고 했습니다. 독감백신 무료 접종의 기준을 소득과 재산으로 하자는 주장으로 해석됩니다. 주 원내대표 말대로 하면 이미 무료 접종 대상이 되는 1900만명을 제외한 3300만명 가운데 1100만명을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선별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더 큰 문제는 주 원내대표가 말한 선별기준이 타당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주 원내대표가 제시한 기준으로는 부유하지만 건강이 나쁜 사람 대신 가난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독감백신을 맞아야 합니다. 백수인 만 20세 청년은 접종 대상이 되겠지만, 퇴직한 만 60세 노인은 독감백신을 맞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소득에 상관없이 어린이 및 임신부, 노인 등에게 무료로 독감백신을 접종하는 건 이들이 고위험군이기 때문입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 감염 시 합병증이 높은 고위험군에 대해 중점적으로 예방접종을 시행하고 있고, 그래서 유아·임신부·기저질환자 또는 62세 이상 성인이 (무료접종) 대상이 됐다"며 "무료접종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만성질환자는 접종을 받길 권고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민주당의 통신비 2만원 지원안을 비판하며 예산을 정말 시급한 곳에 써야 한다는 국민의힘의 지적은 타당합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을 뿐더러 일부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방안을 내놓은 것은 유감입니다. 여야의 포퓰리즘 경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국민을 더 지치게 하고 있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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