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숫자들은 쓱 쳐다보고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한도를 꽉 채워 수억원을 대출받아 주식에 ‘몰빵’하거나, 집을 산 사람이 주변에 수두룩한 현실을 접하면 비로소 깜짝 놀라게 된다. ‘저 빚을 다 어찌 갚으려고…’
동료, 친구들의 이런 행동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는 천룡인(天龍人)을 넘보면 안 된다’는 듯 자행되는 공정의 파괴를 보면서 나름대로 삶의 일단을 건 결단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위는 지극히 진중하다.
의도의 불순함이 드러나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점심 회동 다음날(10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더불어민주당 지지도(7∼9일)는 전주보다 4.1%포인트 떨어진 33.7%로 주저앉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태 등의 여파로 국민의힘(32.8%)과 다시 접전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영구국채론’도 마찬가지다. 그는 “가계소비 지원을 위해 정부가 0% 금리로 국채를 발행하고, 한국은행이 인수하게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 원화가치 폭락 우려는 깡그리 무시했다. 비(非)기축통화국이라는 한계로 부작용이 불 보듯 뻔한데도 그랬다. ‘기본대출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서민들 대출연체를 국가가 부담하자”는 주장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표적 좌파이론가였던 주대환 죽산조봉암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의 말대로 “이 정부 핵심 인물들은 학생운동권 시절부터 교내 자판기 수익을 갖는 등 이른바 ‘캠퍼스 권력’을 보장받았던 이들”이다. 치열하게 부(富)를 일군 경험이 거의 없으니, 나랏돈 무거움이 체득됐을 리 없다. “재정은 곳간에 쌓아두면 썩기 마련”이라는 희대의 발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굳이 ‘월가 전설’들까지 갈 것도 없다. 영업점 셔터가 내려간 뒤 전산상 기록과 실제 금액이 맞아떨어지는지 맞춰보는 은행원들의 긴장감에서도 돈 만지는 사람들의 ‘진짜 윤리’를 느낄 수 있다. 모자라면 당사자가 메워야 하고, 남으면 가수금 계정에 넣은 뒤 3개월 동안이나 출처를 찾아야 한다. 돈은 이 과정을 거쳐 ‘가장 소중하게 다루고, 정확해야 할 존재’가 된다.
코로나 위기 후 천문학적 자금이 풀렸다. 누구나 ‘화폐의 타락’을 얘기한다. 그러나 말은 바로 하자. 화폐의 타락인가, 선심쓰듯 퍼부은 자들의 타락인가. 주저 없이 “후자”라고 답하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적이 언제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떠오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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