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약자’라는 단순논리에 따라 임차인을 더 보호해 주택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근시안 정책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이 강화됐지만 후폭풍이 만만찮다. 헌법과 민법에 뚜렷하게 명시된 ‘사적자치’의 영역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한 부작용이다. 주택임차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는 여러 갈래로 있는데도, 무리하게 더 강화하겠다는 ‘법 만능주의’가 자초한 결과다.
졸속법의 심각한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관적 당위론이나 도덕론에 입각해 쉽게 발의되고 날림 제정되는 법이 너무 많다. “추석이고 하니, 농축수산물은 잠시 유보하자”며 시행령을 고쳐 법의 핵심과 취지를 흔든 ‘부정청탁금지법’도 그런 사례다. 안전사고가 일어나자 곧바로 과도한 처벌법을 만들어놓고, 국회의원 자신들조차 뒤에서는 “문제가 많은 날림법”이라고 개탄했던 개정 산업안전보건법도 그런 측면이 강하다.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조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법안까지 발의돼 있다. 곤경에 빠진 타인을 돕고 구제하는 것은 미덕이고 기릴 일이지만, 이는 도덕과 선의의 영역이지 법적 의무로 강제하기는 어렵다. 법과 윤리도 구분 못 한 채 ‘당위법’ ‘강제법’ ‘금지법’을 마구 만들면 그 법이 과연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까.
전세시장을 흔드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의욕만 앞세운 채 졸속 개정한 탓에 법 해설서까지 나왔다. 현실의 수십, 수백 가지 갈등 사례가 해설서로도 명쾌하게 정리가 안 돼 정부에 민원과 유권해석 요구가 쇄도하자 국토교통부와 법무부는 서로 ‘네 업무’라며 답변을 미룬다고 한다. 국민이 사법시험 준비생처럼 머리 싸매고 해설서를 정독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민원 질의를 해야 한다면 이게 과연 법인가. 숱한 갈등은 결국 법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시간과 비용도 문제지만, 요즘처럼 법원까지 ‘편향 논란’에 휩싸인 판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정이 가능할까.
모호한 졸속법이 많을수록 자의행정이 늘고 공무원 재량만 커지게 된다. 진영논리가 더 부각되고, 수많은 정책이 법원으로 가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이다. ‘전관예우’라는 범죄적 적폐도 이런 고질적 관행에서 비롯된다. 올해에도 정기국회 막바지쯤 일괄처리 법안 ‘개수’를 놓고 벌이는 ‘떴다방 좌판’ 같은 여야 간 흥정을 또 보게 될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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