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조광화 "극한 열정 지닌 능동적 캐릭터로 베르테르 그렸죠"

입력 2020-09-16 17:53   수정 2020-09-17 03:12


2000년 초연한 창작 뮤지컬 ‘베르테르’(사진)는 그동안 김광보, 고선웅, 조광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연출가들이 번갈아 무대화하면서 ‘진화’해 왔다. 이 중 가장 많은 무대를 책임진 연출가는 조광화다. 2003년과 2004년, 2006년, 2013년, 2015년에 이어 올해 탄생 20주년 기념 공연의 연출을 맡았다. 뮤지컬 애호가들이 베르테르 연출 하면 조광화를 떠올리는 이유다. “2003년 뮤지컬 대본을 쓴 고선웅 작가가 저를 찾아와 연출을 맡아 달라고 했던 날이 생각납니다. 방황하던 시기였는데 베르테르를 연출하며 공연에 대한 열정을 되찾았습니다. 20주년까지 올 줄 몰랐는데 많은 관객이 끊임없이 베르테르를 기억해주고 사랑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는 베르테르가 부럽습니다.”

20주년 무대를 올리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개막일이 지난달 28일에서 이달 1일로 미뤄지고, ‘좌석 띄어 앉기’ 의무화에 따라 공연장인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의 좌석 예매도 다시 이뤄졌다. “공연을 지켜주려는 관객들의 노력 덕분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대를 올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리두기 좌석제, 공연 전후 면회금지 등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키며 공연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독일 작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원작이다. 순수한 청년 베르테르가 롯데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겪는 갈망과 고뇌를 그렸다. 그는 베르테르가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비결로 “베르테르가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란 독특한 견해를 제시했다. “대부분의 뮤지컬은 역경을 뚫고 원하는 것을 이루거나 성장하는 일종의 영웅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르테르는 실패하죠. 베르테르를 보고 있노라면 불완전한 제가 위로받는 것 같습니다.”

초연 이후 제작될 때마다 수정되고 달라져온 베르테르는 그가 연출한 2013년 무대에서 비로소 완성됐다는 평가다. 2015년에 이어 올해 무대도 2013년 버전이다. “음악을 현악 위주로 새롭게 편곡했어요. 음악이 풍성해지고 다채로운 감성이 더해졌죠.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있으면 부드럽게 휘감는 파도 속에 제가 실려가는 느낌이 듭니다.” 무대 디자인도 확 바꿨다. “정승호 무대 디자이너가 미니멀한 무대와 현대 의상을 제안했습니다. 무대를 비워낸 만큼 인물의 내면을 더욱 상상할 수 있었죠.”

이번 공연에선 ‘5인 5색’의 베르테르도 즐길 수 있다. 엄기준, 카이, 유연석, 규현과 오디션 프로그램 ‘더블 캐스팅’의 우승자인 나현우가 각자의 개성을 살린 무대를 선보인다. “한 동선으로 억지로 통일시키려 한다면 개성이 억압될 우려가 있습니다. 배우들에게 해석의 자유를 최대한 많이 줬죠.”

가장 중점을 둔 연출 포인트는 지나친 감상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슬픔을 표현한다고 해서 감상적으로 되지 않으려 해요. 베르테르를 죽음을 향해 가는 부정적 캐릭터가 아니라 극한의 열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능동적 캐릭터로 그려내겠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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