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이른바 G2(주요 2개국)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상징하는 지역이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 서쪽 해변의 섬 엔젤아일랜드엔 19세기 미국 이민을 원하던 중국인들을 심문하는 ‘이민자 수용소’가 있었다. 1882년 발효된 ‘중국인 배척법(중국인 노동자의 이주를 금지한 법률)’ 발효 후 미국 내 중국인들은 엄청난 차별에 시달렸다.
21세기인 지금, UC버클리를 비롯한 캘리포니아주 명문 대학엔 중국인 유학생들이 넘쳐난다. 실리콘밸리에선 중국인 투자자를 상대로 투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한다. 할리우드 영화계는 중국의 거대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뜨겁게 경쟁한다. 두 세기 만에 양국 간 위상이 변한 것이다.
《트랜스퍼시픽 실험》은 미국 언론인이자 중국 분석 전문가인 매트 시한이 지리적으로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중 양국의 민간교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 책이다. ‘트랜스퍼시픽 실험(Transpacific Experiment)’은 미 캘리포니아주와 중국 사이에 형성되는 학생, 기업가, 투자자, 이민자와 갖가지 아이디어의 역동적인 생태계를 의미한다. 저자는 “이제 양국관계가 중점적으로 이뤄지는 곳은 백악관이 아니라 일반 가정집이며,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아니라 학부모 모임”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나라가 어떻게 만나고, 협력하고, 경쟁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워싱턴DC나 베이징에서 벗어나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교육, 기술, 영화, 녹색투자, 부동산, 미국의 정치 등 6개 영역으로 나눠 미·중 사이의 교류 현장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중국 학생들은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학문의 지평을 넓히며 ‘위대한 중국’에 대한 애국심과 미국에 대한 반발심을 동시에 드러낸다. 중국의 성장(省長)이 캘리포니아의 탄소 시장을 연구하고, 중국의 유망한 첨단기술 인재들이 구글과 같은 대기업에 입사한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자가 중국 투자자를 찾으며 그들의 마음과 돈을 얻으려 발이 닳도록 뛰어다닌다. 캘리포니아주 내 도시의 시장이 중국으로부터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구애의 손길을 보낸다.
저자는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소프트파워’와 부동산, 정치 등 3개 분야에서 나타나는 미·중의 ‘기묘한 협력’에 집중한다. 영화 제작의 경우 미국과 중국은 처음에 서로 반겼다. 그렇지만 지정학적 역학 관계로 인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면서 양측은 ‘공동제작’ 모델로 접어들게 됐다. 중국의 부유한 후원자와 할리우드의 제작자는 파트너십의 통제권을 두고 무대 뒤에서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했다. 저자는 이를 ‘인위적 중매결혼’이라 은유한다.
중국인들은 미국 부동산 시장에 세 가지 경로로 접근했다. 첫 번째는 상업적 건설 프로젝트 직접 투자, 두 번째는 개별 중국인 가족의 주택 구입, 세 번째는 미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EB-5 프로그램’이다. EB-5는 외국인이 1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미국 기업에 50만달러 이상을 투자할 경우, 투자자 본인과 가족에게 미국 영주권을 제공하는 일종의 투자이민제도다. 저자는 “지난 10년간 EB-5 비자를 받은 사람은 대부분 중국인 투자자였다”며 “그들은 이 프로그램에 배정된 영주권의 80%를 독식했다”고 말한다.
정치 분야는 가장 특이한 형태를 보인다. 저자는 반(反)이민주의를 대놓고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지지하는 중국계 미국인이 생각보다 많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4세대 중국인 이민자들에 대해 언급한다. 이 그룹은 교육 수준이 높고, 표준 중국어를 구사하고, 교외 지역에 거주한다. 이들은 자신이 아시아인이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는 대립각을 세웠지만, 미국 시민이거나 영주권을 가진 4세대 중국인 이민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지난 10년 동안 캘리포니아는 양국 간 민간 관계의 거대하고 생생한 실험장 역할을 수행했다”며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상은 트랜스퍼시픽 실험의 초기적 효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 고사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변수가 많아 예측하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뜻)를 인용하며 “(미·중 모두) 자신이 모르는 대상에 깊은 존중을 표시하고, 그 대상을 알게 됐을 때 진정으로 기뻐하는 겸허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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