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이 그 이름과 모습을 바꾸는 동안 판사들은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요? 세대차이, 성비, 법관으로서의 숙명 등 2020년 '요즘' 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21년차 한 부장판사는 "내가 배석일 땐 주말근무는 당연하고 판결문 수정도 일과 끝나고 야근하면서 협의하는 게 일상이었다"며 "욕설이나 폭언도 오가고 부장 화나면 사건 기록도 막 날아다녔는데 요새 그렇게 했다간 바로 법원 고충처리위원회에 올라갈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또 "합의부 3명이 매일 붙어다닌다는 것도 옛말"이라며 "우리 배석들하고 일주일에 2번 정도 밥 먹으면 많이 먹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로스쿨 출신의 3년차 판사는 "배석들끼리는 누구누구 부장이 좋나 서로 비교하곤 한다"며 "주말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무 열정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대표적인 '벙커'(함께 일하기 싫은 부장판사를 일컫는 법조계 은어)는 배석이 없는 방을 마음대로 드나들거나 퇴근할 때 카풀 요청하는 부장님, 변호사가 낸 서면이 안 보인다며 타이핑으로 쳐달라는 부장님, 본인은 화장실을 자주 가지 않는다면서 오후시간 내내 휴정없이 재판하는 부장님 등이 있다"며 "거절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속으로 삭히고 있으면 '표정이 왜그러냐, 말을 해야 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또 돌아온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젊은 판사들 사이에서도 생각을 달리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한 4년차 판사는 "몇몇 부장판사들은 '좋은 부장 컴플렉스'에 걸려 필요한 의사소통도 잘 안하는 경우가 있다"며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법원 문화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법연수원 15기(1984년 입소)와 20기(1989년 입소) 중 여성 연수생의 비율은 각각 0.6%와 3.2%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마지막 사법시험을 치른 49기(2018년 입소)는 약 42%가 여성이었습니다.
16년차 한 부장판사는 "연수원 20기 전후만 해도 사법시험을 치러 법관이 되는 여성이 거의 없었다"며 "30기 즈음해서 늘어나기 시작했고 연수원 최고 성적은 거의 여성들의 몫이어서 그때부터 여성 법관이 많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12년차 여성 판사는 "전체 비율로 보면 30% 가량이 여성이지만 경력 5년차 이하 성비가 거의 반반"이라며 "10~15년 전만 해도 '여자 판사가 어떻게 형사 단독을 맡지?'하는 인식까지 있었는데 빠르게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요즘은 이같은 인식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가끔 피고인들이 '여자 판사'라 우습게 보는 경우가 없진 않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럴수록 재판을 더 실수 없이, 더 뒷탈없게 정확하게 하려고 한다"며 "그래서 나중에는 여자 판사를 더 무서워 하기도 한다(웃음)"고 덧붙였습니다.
선후배 가리지 않고 모든 판사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항상 누군가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숙명을 무겁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요 사건을 맡을 때 심정이 어떠냐'는 질문에 17년차 한 부장판사는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건이더라도 모든 사건은 당사자에게 있어 인생이 걸린 '주요 사건'"이라며 "선고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사건(판결)에서 도망칠 수도 없지만 그 무게는 판사의 숙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내 동기는 정치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을 맡으면 친한 친구 모임에도 안 나온다"며 "큰 사건을 맡을수록 몸가짐을 조심하는 건 판사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요즘 판사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늘어나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8년차 한 판사는 "판결에 대한 비판은 솔직히 언제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법관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은 법치주의 전체를 흔드는 일"이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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