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법의 결과물로 이뤄진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의 결과는 어떠할까. 2018년 9월 기금운용본부장(CIO)인선난과 핵심 인력 유출의 이중고를 겪던 국민연금의 문제점에 대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일갈은 여전히 금융시장에 회자된다. WSJ는 "미래형 유리 벽 건물로 돼 있는 국민연금 주위엔 양돈장과 퇴비 매립시설 등이 있어 기금운용본부장은 냄새를 참아내야 한다"며 국민연금을 비꼬았다. WSJ는 돼지 삽화를 넣고 "이웃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neighborhood)"라고 적었다.
◆"한번 오가다 하루 다 지나...전주 방문은 1번만"
그러나 냄새는 기금운용본부를 비롯한 국민연금공단 직원과 국민연금을 찾는 금융인들이 겪는 고충을 감안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펀드 조성을 위해 한국을 찾았던 한 미국계 자산운용사 대표의 말에 따르면, 전주와 익산, 김제의 경계 즈음에 있는 국민연금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출자자를 찾기 위해 일주일 남짓한 아시아 출장을 계획한 그는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새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그는 일단 서울 시내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리곤 서울역으로 이동해 전주행 기차를 탔다. 1시간 40여분을 달려 전주에 도착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또 다시 거기서 택시를 타고 20여분을 가야 했다.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미팅을 위해 그가 투자한 시간은 서울 시내 이동과 기차 대기 시간 등을 포함해 7~8시간 가량.
그는 "그 때 이후로 두어번 한국을 찾았지만 국민연금을 다시 찾지는 않았다"며 "8시간이면 서울에 있는 다른 LP(출자자)들 대여섯 군데를 만날 시간인데 하루도 안되는 일정의 절반을 한 곳에만 쏟을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계적인 연기금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기차역에서 그렇게 먼 것도 이해가 안 간다"고 덧붙였다.
외국인의 눈에는 KTX등 교통 인프라의 혜택을 받지 못한 지역을 혁신도시로 지정하고 글로벌 연기금을 이전시킨 한국형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던 것.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이 많다는 게 국민연금 안팎의 이야기다. 투자업계선 "국민연금에는 큰 딜 아니면 죽은 딜만 간다"는 말이 나온다. 이미 다른 국내 LP들로부터 펀딩이 가능한 운용사 입장에선 투자 규모가 정말 큰 경우가 아니면 굳이 국민연금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민연금 운용역들이 좋은 투자건을 발굴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매년 기금이 폭발적으로 늘며 투자해야 하는 자금은 늘어나는데 좋은 투자건을 찾긴 어려워지니 국민연금 운용역들은 대형 운용사가 한국을 찾을 때마다 하루 사이에 서울과 전주를 오간다. 그마저도 서울 출장에 대한 감사 강도가 높다보니 서로 눈치를 보며 상사가 출장 갈 때를 맞춰 단체로 서울에 간다는 것이 국민연금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국민연금 출신 운용역은 "사람도 정보도 다 서울에 있고 정말 돈이 되는 깊은 정보는 네트워크에서 나오는데 출장 하나 가는 것도 눈치를 보니 경쟁력이 있겠나"며 "국민연금 운용역들의 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중심지 구호 무색..."금융공기관 더 옮겨도 의미 없어"
매년 이어지는 운용역들의 대량 퇴사도 이처럼 열악한 환경이 낳은 결과다. 국민연금은 최근 기금운용인력이 퇴직시 퇴직 30일전까지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기금운용직원 퇴직 사전 예고제'를 추진 중이다. 매년 이어지는 운용역의 대량 퇴사로 한해 2~3차례에 걸친 인력 충원에도 매년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짜낸 고육지책이다.
자본시장의 큰 손인 국민연금의 이전이 국민연금과 거래하는 수백개 국내외 금융사들의 연쇄 이전으로 이어져 전주가 금융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전혀 충족되지 않고 있다.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이 4년 가까이 지났지만 국민연금을 따라 전주로 주요 기능을 옮긴 금융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전라북도와 국민연금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민연금이 있는 전주혁신도시에 지사를 설치한 곳은 국민연금의 해외 수탁은행인 스테이트스트리트은행(SSBT) 뉴욕멜론은행(BNY Mellon)과 국내 수탁은행인 우리은행 그리고 SK증권, 무궁화신탁, 현대자산운용 등이다.
이들 모두 본사는 서울에 두고 극히 일부 인력만을 전주에 배치했다. 현대자산운용을 인수한 무궁화신탁이 기존 전주지점을 이전한 것을 감안하면 순수한 국민연금 이전 효과는 더 떨어진다. 한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 대표는 "정치권에서 떠도는 얘기처럼 몇 개의 금융기관이 전주나 지방으로 옮겨간다고 해도 극소수의 인력을 파견하는 것 말곤 할 생각이 없다"며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고 금융중심지가 되나"고 말했다.
<9월23일 오전 (3)편으로 이어집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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