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무리한 기소였나…이태종 前법원장도 무죄

입력 2020-09-18 17:29   수정 2020-09-19 01:56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 내부 비리에 대한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수사 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 14명 중 6명이 1심에서 무죄를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김래니)는 18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이태종 전 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법원장은 2016년 10~11월 서울서부지법 집행관 사무소 직원들의 인건비 횡령 비리와 관련, 기획법관 등과 공모해 검찰 수사 영장 사본을 입수하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하는 등 수사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법원 사무국장 등에게 영장 사본을 구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그 배경에 법원행정처 차원의 ‘제 식구(법원 직원) 감싸기’가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이 전 법원장의 행위가 모두 ‘정당한 업무’였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에게는 (직원들 비리에 대해) 철저한 감사를 하겠다는 목적이 있었을 뿐”이라며 “이 전 법원장이 수사 확대를 막으려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설령 영장 사본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법원장의 정당한 업무”라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서울서부지법 기획법관이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내용 중 수사기밀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전 법원장이 공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이 전 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등의 공소사실에 공범으로 적혀 있지 않기 때문에 이날 선고가 다른 사법농단 사건에 미칠 영향은 다소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전 법원장의 지시가 정당한 업무였다고 판단한 점은 향후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검찰은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재판부는 이 전 법원장의 공무상 누설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기획법관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렸다”며 “항소해 사실관계와 법리에 대한 판단을 다시 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재판 개입 등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앞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임성근 부장판사 등 3건의 사건 관계자 5명 모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외 임 전 차장과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등의 재판은 진행 중이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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