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 한 마스크 제조 공장은 중국 투자자의 도움으로 설비를 들여와 지난 5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했지만 최근엔 거의 휴업 상태다. 이 공장 대표 A씨는 “마스크사업은 절대로 안망한다는 소식에 2금융권에서 대출 받고, 중국측에서 설비까지 구해 공장을 지었는데, 매출이 거의 없다”며 “마스크 겉감과 안감용 부직포 등 국산 원·부자재를 구하기 어려운데다 판로도 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수도권에서 마스크 공장을 운영하는 B사장은 “국내 3대 산업단지로 불리는 시화·반월·남동산단을 비롯해 경기 양주, 평택, 화성, 포천과 충북 음성 등 전국 곳곳에서 마스크생산을 접었다는 중소기업들의 소식이 들린다”며 “폐업은 아니더라도 감산하거나 재고만 쌓아놓고 휴업 직전인 업체도 수십군데”라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특수’를 노리며 우후죽순 생겨난 중소 마스크 생산공장이 최근 가동률이 떨어지고, 휴업과 폐업도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남동산단 인근에서 덴탈마스크를 제조하는 C업체는 마스크제조 설비를 10대이상 들여와 공장을 지었는데, 몇달째 가동을 못해 최근 헐값에 매물로 내놨다. 이 지역 부동산중개업체 관계자는 “마스크 공장 사장들이 요즘 안색이 꽤 안좋다”며 “공장 매물도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마스크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대 마스크 생산기지인 중국에서 ‘품질 불량’문제로 해외 수출이 막히자, 제조 설비를 한국에 헐값에 넘기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여기에 공장 투자로 한 몫을 챙겨보자는 투자자들까지 가세하면서 마스크공장이 공급과잉인 상태”라고 말했다.
산업단지 공장설립정보망(팩토리온)에 따르면 국내 마스크 공장은 지난 2월 380개에서 8월말 현재 1090개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통계에 잡힌 대부분 업체는 중소기업으로 한 개의 공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때, 실질적인 마스크 제조업체가 1000곳을 넘는 다는 얘기다.
경기지역 한 산업단지 관계자는 “이 지역에 마스크 공장은 3월 3곳이었는데, 현재 100곳이 넘는다”며 “경기가 어려워 기존 부품공장을 접고 마스크 시장으로 뛰어든 중소기업인들이 많다”고 전했다. 정부가 산업단지 입주 제한 규정을 풀어 마스크 손소독제업체에 대해선 ‘K-방역’업체라며 입주를 허용해준 것도 마스크 공장 설립이 많아진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마스크 공장 설립 붐이 일자, 마스크 제조에 쓰이는 설비를 만드는 업체의 매출도 급증했다. 인천 반월산단 관계자는 “기존 공장을 접고 투자처를 물색하던 한 투자자는 한꺼번에 20대의 마스크 제조 설비를 구매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마스크 생산 공정은 필터, 부직포 등을 제단해 압착하고, 코 지지대, 귀끈 등을 넣는 작업으로 일반 제조업에 비해 공정이 간단한 편이다. 공장을 세워 가동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2~3달 정도 밖에 안 걸리고 면적도 크게 차지하지 않아 60평에 7대 설치도 가능하다.
수요가 급증하자 마스크 제조 설비 가격은 올초 5000만~6000만원대에서 최근 1억~2억원까지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크 제조 설비업체 가운데 매출이 4~5배로 증가한 곳도 많다. 토종 마스크제조설비회사인 경기도 화성시 JSM테크의 경우 올해 초 직원이 2명에 불과했지만 밀려드는 일감에 현재 직원이 60~70명수준으로 급증했다.
마스크 생산 공장이 위기에 빠진 근본 원인은 부직포와 멜트블로운(MB) 필터 등 국산 원·부자재 공급이 막혔기 때문이다. 국내 마스크용 부직포 시장은 일본계 화학소재 업체인 도레이첨단소재가 60%, 유진그룹의 한일합섬이 2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시장은 대명, UPC, 락커, 크린손 등 중소기업 5곳이 나눠 갖고 있다. MB필터의 경우 크린앤사이언스, 3M, 웰크론 등 10여곳이 골고루 시장을 점유하며 생산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대다수 내년 상반기까지 기존 거래하던 마스크 생산업체와의 거래 물량도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들어 신규로 마스크 제조에 뛰어든 업체로서는 국산 부직포와 MB필터를 구할 길이 없어져 내년까지 공장을 놀려야할 판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산 부직포와 MB필터를 수입하기엔 ‘품질리스크가’가 크다는 분석이다. 경기도 한 마스크 제조업체 대표는 “중국산 부직포는 포장 불량으로 냄새가 좋지 않은 사례가 많고, 일부에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되는 사건이 발생해 미국과 유럽으로 제대로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MB필터의 경우 수요가 급증하자 생산업체들이 가격을 작년의 3배 수준으로 올린 것도 국내 마스크제조업체들의 원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스크 공급 과잉으로 이미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점도 마스크업체들이 줄줄이 휴업과 폐업을 하게 된 배경이다. 한 마스크업체 사장은 “우리 같은 신생업체들의 마스크는 판로를 뚫기 어려워 시중에서 판매가 거의 안된다”며 “큰 업체들이 단가를 후려치면 작은 업체들은 망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중국이 코로나19종식을 선언한 것도 국내업체엔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감하면서 마스크 수요가 급감했고, 이달 초순부턴 일반 학교에서 학생들도 마스크없이 등교가 가능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마스크 제조업체 관계자는 “중국에서 재고로 쌓인 엄청난 물량의 비의료용 덴탈마스크가 국내로 공급되기 시작했고, 관련 설비도 헐값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영세 업체들은 더욱 고사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전했다. 마스크 중간 유통상들이 중국에서 사실상 '고철덩어리'취급받는 중국 마스크 설비를 국내에 들여오면서 중소기업인들의 마스크공장 설립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공적 마스크 제도가 폐지되면서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이 뚫려 1500원에 팔리던 식약처 인증 마스크가 최근 700~900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점도 영세업체들엔 부담이다. 한 마스크업체 영업 담당자는 “마스크 공급 과잉에 올들어 최저임금 상승 등 인건비 부담으로 마스크 한 개를 팔아도 남는 돈이 10~50원 수준 밖에 안된다”며 “올들어 공장을 세운 업체는 고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국내 마스크 공급량은 수요의 2배 이상 수준”이라며 “인구가 5000만명인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국민들이 하루 1개의 마스크를 소비한다고 가정해도 현재 하루 적정 생산량은 3000만개”라고 밝혔다. 현재 평일 하루 마스크 생산량이 식약처 미인증업체를 감안하면 8000만~9000만개에 달하는 데, 이 상태가 지속되는 한 중소 마스크업체들이 휴업이나 폐업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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