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길에는 식당, 바, 펍 등 소규모 가게들이 모여 있는데, 나름대로 아름다움과 고유한 문화를 지닌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스 퍼레이드 애비뉴의 인도 식당 ‘지 사히브’의 금요일 저녁 창가 자리는 늘 옥스퍼드대 화학과 데이비스 교수로 예약된다. 데이비스 교수는 1992년 10만파운드(약 1억5000만원)에 집을 저당 잡혀 ‘비대칭 화학 합성 전문회사(Oxford Asymmetry)’를 설립했고, 2000년 독일 에보텍에 3억1600만파운드(약 4800억원)에 넘겼다. 이 돈의 대부분은 옥스퍼드대에 기증하고, 남은 돈으로 집에 와인 셀러를 두고 유럽 와인을 즐겼다.
옥스퍼드대는 기증액의 25%를 화학과로 환원해 저명 교수 채용, 첨단시설 투자에 쓰게 하고 6500만파운드(약 1000억원)를 들여 세계 최고 수준의 유기화학 분야 연구 빌딩도 세웠다. 이를 본 정부와 저명 제약회사가 지원에 나섰다. 이후 데이비스 교수는 14개 이상의 회사를 더 설립하게 되고 총 2조7000억원의 의약·화학 시장가치를 형성했다(케미스트리월드, 2008년 5월). 데이비스 교수는 이후에도 근육 속 단백질이 결핍돼 세포와 조직이 괴사하면서 대부분 20세 초에 사망한다는 근이양증 환자를 위한 신약 연구를 하는 등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왔다.
데이비스 교수는 금요일 저녁이면 종종 이 인도 식당으로 와인을 들고 가 이웃 테이블의 지인들과 즐긴다. 식당 측은 함께한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7~8종의 와인을 ‘데이비스 교수 추천 와인’으로 정했다. 이웃들은 귀한 와인을 싼 가격에 즐기고, 때론 데이비스 교수와 대작도 한다. 1969년 옥스퍼드대에 입학한 데이비스 교수는 자기를 키워준 대학과 이웃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이런 선행으로 되돌려주고 있다.
지난해 말 지인과 옥스퍼드를 방문했다.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오래된 회랑으로 둘러싸인, 보리수나무와 정원이 특히 아름다운, 뉴칼리지를 방문하니 수백 년 된 웅장한 나무 대문이 닫혀 있었다. 문을 두드리니 갑자기 수위 복장을 한 데이비스 교수가 나와서 놀랐다. “웬일로 여기에 계시느냐”고 하니 “명예교수로 있는데 가끔 수위들이 바쁘면 대문을 열어주는 봉사도 한다”고 답했다. 내게 “옥스퍼드를 떠났는데도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칼리지는 문을 닫았지만, 내부를 구경하라고 살짝 들여보내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런 데이비스 교수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전형적인 모델이 아닐까? 안개 어렴풋한 저녁, 옛날 전통의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낭만적인, 노스 퍼레이드 애비뉴의 금요일 저녁 거리에서, 와인 한잔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노(老)교수 부부의 아름다운 실루엣이 아련히 그려진다. 이런 옥스퍼드의 다양하고 따뜻한 토양이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최초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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