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표의 '단독 플레이'…쌓이는 당내 불만

입력 2020-09-21 17:29   수정 2020-09-22 01:38

여야 당대표들이 주요 입법과 예산 심사에 사실상 ‘지침’을 내리면서 개별 의원들의 법안·예산안 심사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정의 4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급’ 방안을 직접 제안했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소위 ‘기업규제 3법(공정경제 3법)’에 당내 논의도 없이 찬성 방침을 밝혔다. 중요한 원내 의사결정이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들이나 원내 지도부가 아니라 당대표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는 ‘입법 독주’가 우려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의 민주당 주요지도부 초청간담회에서 4차 추가경정예산과 관련해 “국민에게 통신비를 지원해드리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에게 깜짝 제안했다. 6일 정례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서 일괄 지급이 결정됐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효과에 의문을 나타내며 우려하고 있지만 이 대표의 의지가 강한 탓에 공개적인 발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날 예결특위에서도 여당 의원들의 통신비 2만원 지급안에 대한 엄호가 이어졌다. 이광재 의원이 전날 “통신 3사에 돈이 들어가 소비 지출과 연동되는 승수효과가 없어 아쉽다”고 언급하면서 “당에서 결정해 동의하는 쪽”이라고 덧붙인 정도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취임하고 처음으로 건의했다고 해서 끝까지 고집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당대표가 의원들의 법안 심사 방향에 관여하는 것은 국민의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기업규제 3법과 관련, “담당 상임위와 당 정책위원회에서 조항 하나하나를 검토하고 있다”며 “조항마다 입장이 다른데 법안 자체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잘라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에게 대놓고 반대한 것은 아니지만 원내 지도부 차원의 깊이있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당 내부에선 상임위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입법 방향을 제시한 게 김 위원장의 ‘월권’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정무위 소속 한 의원은 “위원장이 저렇게 말하는데 당연히 하고 싶은 문제 제기를 다 못하지 않겠느냐”며 “우려도 많지만 분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일까봐 일단은 조용히 있다”고 했다. 한 재선 의원은 “막말로 본인(김 위원장)은 국회의원도 아니지 않냐”며 “입법권도 없는 사람이 왜 이래라저래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문제는 당대표가 입법 방향 지시를 내리는 ‘톱다운 방식’의 의회정치가 계속되면 입법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높은 당 정책위와 상임위 대신 중앙당이 입법권력을 가지면 법안과 예산안의 세밀한 심사보다는 ‘표심’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당대표가 원내 전략을 원내대표와 상임위 간사들에게 맡기고 본래 업무인 당무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규제 3법과 관련) 호소하기 위해 주 원내대표가 아니라 김 위원장을 찾는 것부터 입법주도권이 잘못된 사람에게 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당헌·당규상 원내 전략은 원내대표가 짜야 맞는데 현실에선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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