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펴낸 ‘호모 루덴스’에서 하위징아는 ‘열심히 물건을 만드는 사람(homo faber)’이 있으면 마찬가지로 ‘열심히 노는 사람(homo rudens)’이 있고, 중간에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homo sapiens)’도 있다고 했다. 이솝 우화의 ‘개미와 배짱이’에 비유하면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른 배짱이 사이에 적절히 균형을 맞추는 ‘개미배짱’ 정도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놀아야 잘 노는 것인지 물었을 때 즉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각자의 관심사와 유희의 방식이 다양한 탓이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유희 속에 늘 ‘여행’이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파고들어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로 규정했다. 생존을 위해 결코 이동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인류의 이동 본능을 충족시키는 도구로써 이동 수단의 중요성을 주목했고, 말(馬)에서 비롯된 ‘탈 것(riding things)’의 비약적인 발전은 결국 본능이 발현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마음만 먹으면 즉시,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대표적 이동 수단인 ‘자동차’는 지난 14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발전의 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배출가스의 저감이다. 자동차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만큼 대기오염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에 언제나 ‘효율’이 화두였다. ‘고효율=배출가스 저감’의 공식은 경량화, 연소율 증대, 그리고 정화장치 부착 등을 이끌어냈다.
두 번째는 안전이다. 사고 가능성을 낮추는 능동 안전장치부터 사고 후 부상 가능성을 낮춰주는 에어백, 안전띠 등의 수동안전장치까지 다양한 기능이 순차적으로 적용됐다. 세 번째는 편의성의 향상으로 사람이 직접 수행하는 ‘운전’이라는 행위를 가급적 줄여주는 것이다. 여전히 운전대를 잡는 주체는 인간이지만 ‘운전’을 운전보조기능(ADAS) 활성화를 통해 기계 운전 비중을 최대한 늘리는 쪽으로 진화했다. 미래에도 이런 진화 방향은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
최근 들어 ‘이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으로 해외여행이 좌절(?)되자 자동차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려는 욕구가 솟구치고 있어서다. 이동의 본능 충족 도구로서 자동차의 역할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국내만 해도 상반기 자동차 판매가 전년 대비 6% 늘어난 80만 대를 넘어섰다.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등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 어디든 떠나려는 움직임의 본능이 구매욕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있다. 경제적 부담이 유희의 본능을 이기지 못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위험을 막기 위해 명절 대이동을 억제하니 여행지에 사람이 몰리는 것도 호모 루덴스의 본능이 그만큼 강력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니 말이다.
권용주 <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