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단밀면 농촌마을에 사는 50여 가구는 인근 산을 가려버린 또 하나의 ‘쓰레기 산’때문에 4년간 악취에 시달려야 했다. 이 곳엔 폐플라스틱 폐고무 폐섬유 폐목재 등 19만2000톤에 달하는 폐기물이 축구경기장(7500㎡) 2배 넘는 면적에, 3층 건물 높이(15m)까지 쌓여 있었다. 한 폐기물 재활용업자가 2016년부터 허용보관량(1020톤)의 188배가 넘는 폐기물을 무단 방치하면서 만들어진 산이었다.
작년 3월 CNN에도 보도돼 국제적 망신이 되자, 문재인 대통령과 조명래 환경부 장관까지 나서 그 해말까지 처리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고, 올해 2월까지도 답보상태였다. 전국 소각·매립시설이 포화상태에 달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쓰레기 해외 반출이 막혔기 때문이다. 재활용업체가 의성군과 비용 문제로 법적공방을 벌이다 전기 공급마져 끊어버리는 등 행정을 방해한 영향도 컸다.
환경부는 급기야 시멘트업계에 ‘SOS’를 쳤다. 매립으로 처리하기엔 워낙 방대한 양이어서 재활용할 업체를 수소문한 끝에 쓰레기를 보조연료로 사용하는 시멘트업계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시멘트업계가 나서면서 의성 쓰레기산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7개월만인 9월 현재 전체 쓰레기의 78%인 14만9000톤이 재활용되거나 매립·소각 처리돼 올해말 처리 완료를 앞두게 됐다. 의성군 관계자는 “요즘엔 주민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시야를 가리던 거대한 ‘쓰레기산’이 사라지고 악취가 없어져 고마워하고 있다”며 “쓰레기산 문제 해결의 일등공신은 시멘트업체”라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14만9000톤 쓰레기 처리 방법에서 소각이 5%, 매립이 43.5%를 차지한 반면 시멘트 연료 등으로 재활용한 비중이 51.5%에 달한다는 점이다. 환경부는 “올해말까지 나머지 4만3000톤 가운데 2만톤은 시멘트 보조연료로 재활용하고 2만3000톤은 소각 등으로 처리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쓰레기 처리의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소각로에서 섭씨 850도이상으로 연소해 태우거나 매립하는 방법이다. 환경부와 의성군은 쓰레기산을 처리하기위해 전국 13개 소각업체들을 소집했지만 기존 쓰레기 처리 물량 때문에 난색을 표해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매립 역시 인근 공공매립장이 사실상 포화상태여서 처리에 한계가 있었다.
환경부는 시멘트업체가 제조 과정에서 폐 페트(PET)병, 폐타이어 등을 연료로 활용한다는 사실에 착안,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쌍용양회를 비롯해 한일·한일현대·아세아·삼표시멘트와 성신양회, 한라시멘트 등 7곳이 해결사로 나서 5만7000톤의 쓰레기를 재활용했다.
시멘트업계에선 쌍용양회가 업계 재활용 물량의 91%를 담당해 가장 크게 기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쌍용양회는 올해 830억원을 들여 업계 최대인 연간 50만톤의 폐합성수지를 재활용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다른 업체의 경우 처리 물량의 한계가 있었으나, 쌍용양회는 환경 오염을 방지하면서도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최신 환경 설비를 갖춰 의성 쓰레기 해결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정부도 시멘트업체를 적극 활용해 이러한 쓰레기대란을 해결하고 싶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발에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환경단체에서 재활용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오염물질 발생 문제를 걸고 넘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적인 근거는 좀 더 따져봐야한다는 분석이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유연탄만 사용해 시멘트를 제조할때보다 유연탄과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시멘트를 만들때 카드뮴 구리 납 등 중금속 검출량이 훨씬 적게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또 윤경준 한성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시멘트 연료로 쓰이는 폐플라스틱 폐고무 등 고형폐기물 연소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이산화황이 석탄 석유 등 다른 발전연료 연소할때보다 적게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재활용 시멘트'내 중금속 역시 어린이 모래놀이터의 5분의 1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연세대 라돈안전센터 조승연 교수가 분석한 결과, 시멘트의 라돈 방출량은 실내 공기질 권고기준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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