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핀 모습 短詩로 표현…작고 느린 것의 가치 담을 것"

입력 2020-09-22 17:19   수정 2020-09-23 00:50

“20대 초반부터 시를 쓰면서 스스로 세상에 바라는 게 많아 혼자 조바심만 낸 것 같아요. 4년 넘게 시를 쓰지 않았던 휴식 같은 시간 덕에 이젠 욕심을 덜 부리게 됐죠.”

2013년 절필을 선언한 안도현 시인(사진)은 22일 신작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창비) 출간 기념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절필 기간은 나를 돌아볼 기회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 서정시단을 대표하는 안 시인은 2017년 문예지에 신작 시 ‘그릇’과 ‘뒤척인다’를 발표하며 스스로 내린 금시령을 풀었다. 신작 시집은 2012년 《북향》(문학동네) 이후 8년 만이다.

시집의 대표작 ‘식물도감’은 단시(短時)를 모은 연작시다. 그는 “짧은 시 형식에 많은 이가 매료되길 바랐다”며 “식물들에 대한 느낌과 체험을 시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집 제목은 ‘식물도감’의 한 구절이다. “어느 날 능소화가 2층 창가까지 올라와 바다를 향해 꽃을 피운 모습을 봤습니다. 마치 작은 악기 하나를 창가에 걸어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시로 쓰고 제목까지 달았습니다.”

안 시인은 ‘시인의 말’ 마지막에 “나무는 그 어떤 감각의 쇄신도 없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고 썼다. 그런 감각의 쇄신을 위해 그는 40년간 살던 전북 전주를 떠나 지난 2월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 경북 예천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어떤 쇄신을 꿈꿀까. “삶의 환경이 바뀌면 시도 바뀝니다.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하며 살아야죠. 아파트 같은 높은 곳에 살다가 이젠 텃밭과 흙이 있는 땅에 발 디디고 살게 돼 몸이 다르게 반응할 것 같아요. 새로 유년을 사는 기분으로 지금 발 디디고 있는 고향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부터 관심을 두고 살려고요.”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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