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칼럼] 도시의 생명력

입력 2020-09-22 17:58   수정 2020-09-23 00:40

도시는 기업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국가보다도 생명력이 길다. 경주는 천년고도이고 서울만 해도 700살이 넘었다. 아테네는 7000년, 로마는 28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도시의 생명력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에 있다. 현대의 축제는 사람들에게 도시나 지역을 찾을 명분을 주는 최적의 이벤트다.

현존 세계 최고의 축제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영국 에든버러의 프린지 페스티벌을 꼽는다. 연간 3800여 회의 연극, 오페라, 마술, 거리공연 등이 열린다. 공연 참가자가 3만 명이 넘고 티켓이 200만 장 이상 팔린다. 관광객은 500만 명 가까이 된다. 이 축제의 기원이라고 해 봐야 70여 년밖에 안 된다.
지역 축제는 블루오션 개척史
2차 대전 직후인 1947년 전쟁의 상처를 씻어내고 유럽의 문화예술을 새롭게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이었는데 이 행사에 초청받지 못한 극단과 아마추어 배우들이 별도로 소규모 극장과 거리에서 공연한 것이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프린지(fringe) 즉 변방 세력이 주류가 됐다.

국내에서도 현대 축제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50년대 이후 생겨났다. 1980년대부터 고개를 들어 지방자치제가 자리잡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는 지난해 기준 989개의 축제가 있다.

지방자치제 발달과 연관이 큰 만큼 한국의 축제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시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절박함이 있었고 경쟁도 치열했고 그 결과 놀라운 혁신도 이뤄냈다. 강원도의 산골 도시 화천은 자연환경이 열악하다. 얼음이 가장 먼저 얼고 가장 늦게 녹아 외지 손님이 거의 없었다. 폭이 300m가 안 되고 길이는 십 리 남짓한 화천천이 겨울에 꽁꽁 얼었을 때 산천어 80만 마리를 풀어놓은 것이 혁신이었다. 인구 약 2만7000명인 화천에 산천어 축제를 즐기러 지난해 18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갔다. 3년 연속 외국인은 10만 명을 넘었다. 직접 경제 효과가 1000억원이 넘는다.

충남 보령은 바닷가라 화천보다는 환경이 나아 보이지만 이곳도 해변 진흙이 골칫거리였다. 그런 애물단지를 효자 상품으로 바꾼 것이 머드축제다. 지난해 외국인 39만 명을 포함해 180여만 명이 다녀갔다. 2022년에는 보령해양머드엑스포를 개최할 예정이다.
코로나 역경에도 새 기회 있다
한국의 축제사는 이렇게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새롭게 가치를 찾아내려고 노력한 기록이다. 성공한 곳도 적지 않지만 여전히 도전하고 있는 지역이 더 많다. 그런데 코로나가 이런 노력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대부분 축제가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축제 장사를 준비했던 농어민들은 망연자실이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혁신은 이런 시기에 나오기도 한다. 엊그제 화제가 된 대만의 여행상품 ‘제주 가상출국여행’을 보라. 대만 관광객 120명을 태운 비행기는 제주도 상공을 20분간 선회 비행하다 타이베이로 돌아갔다. 관광객들은 공항에 모여 출국수속을 하고 ‘치맥’이 포함된 기내식을 먹고 면세품을 샀다. 소비자 스스로도 잘 모르던 수요를 창출해낸 블루오션적 혁신이다.

올해 망쳤다고 실망하면 안 된다. 해외에 나갈 방법이 없어지면서 내수 관광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내는 축제에는 또 다른 기회가 생길 수 있다. 국민들이 지역 축제를 찾아줄 때 그 힘은 더욱 커진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의 축제’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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