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고향인 충남 당진에서 상경해 표구 기술을 익힌 고인은 1961년 표구사 ‘동산방’을 설립해 운영하다 1975년 화랑으로 업종을 변경해 ‘동산방화랑’을 열었다. 재래식 재료를 이용한 동양화 표구의 기술자로 유명해 청전 이상범, 월전 장우성, 천경자, 박노수 등 대가들의 단골 표구상이었고, 이는 화랑계 진출 이후 동양 고서화 및 한국화 기획 전시로 명성을 쌓는 기반이 됐다.
고인은 이종상 송수남 송영방 등 30~40대 작가를 발굴해 거장으로 키워냈고, 1976년 명동화랑, 양지화랑, 조선화랑, 현대화랑 등 12개 화랑이 모여 한국화랑협회를 만든 산파역이기도 했다. 화랑협회 2대·6대 회장을 역임하며 미술시장 활성화와 유통질서 확립에 기여했다. 1993년 미술잡지 가나아트가 선정한 ‘한국미술을 움직이는 50인’에 선정됐다.
“화랑의 소임은 좋은 화가의 작품을 좋은 애호가에게 선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던 고인은 1971년 재정이 열악했던 국립현대미술관에 청전 이상범의 전원 풍경 대작 ‘초동’(1926)을 기증하는 등 화랑의 작품 기증 문화도 선도했다. 화상(商)으로는 최초로 2008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화랑협회장을 지낸 아들 박우홍 씨(68)가 고인의 뒤를 이어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장례식은 화랑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서울대병원 25일 오전 9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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