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일 시작하려던 12~18세 어린이·청소년과 임신부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을 잠정 중단했다. 사상 초유의 독감 국가백신 중단 사태를 두고 제약업계에서는 ‘예견된 인재’라고 했다. 국가백신 낙찰가격이 지나치게 낮아 백신 제조사는 물론 유통사도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데다 고질적 리베이트 문제까지 겹치면서 시장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독감 백신 유통을 담당하는 신성약품은 10년간 독점하던 업체가 검찰의 리베이트 조사로 조달시장에서 제외되면서 올해 처음 유통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A형 인플루엔자 2종과 B형 인플루엔자 2종 등 4개 유형의 독감 바이러스를 한꺼번에 예방할 수 있는 4가 백신의 도스당 낙찰가격은 8620원(임신부 등은 9090원)이다. 지난해 3가 백신(A형 2종+B형 1종) 7605원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원가에 못 미친다는 게 백신제조업체들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4가 백신 원가는 1만원 이상이지만 낙찰가격은 이보다 낮게 결정됐다”며 “정부 백신 조달시장은 마케팅 효과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시장이 된 지 오래”라고 했다.
국가백신 입찰은 백신 유통회사가 정부 입찰 계약을 따낸 뒤 백신을 만드는 제약사와 협의해 계약 물량을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유통회사가 백신을 만드는 제약사를 모으지 못하면 계약이 유찰된다. 정부는 계약이 한 차례 유찰되면 입찰가를 높여주며 유통사와 제약사의 참여를 유도한다.
올해는 네 차례 유찰 끝에 독감 백신 유통사가 신성약품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문 신성약품 대표는 “백신 유통 사고는 전적으로 우리의 불찰”이라면서도 “배송 일정이 빠듯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질병관리청이 올해 독감 백신 유통 입찰을 시작한 것은 6월 30일이다. 백신 단가 문제 등으로 수차례 유찰된 끝에 최종 계약은 8월 말께 이뤄졌다. 영유아 백신 접종 일정 때문에 9월 8일부터 배송해야 해 준비기간이 빠듯했다는 게 신성약품의 해명이다.
백신 입찰은 정부가 먼저 기준가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백신 가격을 과도하게 후려쳐 시장 질서를 망가뜨리고 왜곡된 시장 구조가 백신의 질까지 떨어뜨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신성약품이 배송을 맡긴 곳은 2~8도로 냉장 유통할 수 있는 백신 전문 물류업체로 알려졌다. 이 업체는 냉장차량을 이용해 전국에 백신을 공급했다. 그 과정에서 차량 문을 열어둬 일부 물량이 상온에 노출됐고, 이것이 사진으로 찍혀 질병관리청에 신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 측은 광주 지역에서 사진이 찍힌 것으로 추정했다. 업계에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 것으로 추정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문제 된 백신은 아직 접종이 이뤄지지 않았고 다른 유통 경로로 접종된 11만8000명분은 문제가 없다”며 “오는 10월부터 시작하는 62세 이상 접종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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