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0여명 정도였을 때의 일이다. 약수동 모처에서 저녁 회식을 잡았다. 약속된 고깃집의 주소를 통보받고 구글맵을 이용해 찾아갔다. 지도는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표시하는데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간판도 없는 무인 레스토랑이었다. 동네 흔한 5층짜리 건물 2층의 숙성 고깃집이었다. 미리 예약한 손님에게 현관 비밀 번호를 알려주면, 고객은 ‘세팅’된 테이블에 앉아서 냉장고에 잘 숙성돼 있는 고기와 음료를 마음껏 먹는 게 이 집의 ‘룰’이었다.
중국이나 미국처럼 활성화돼 있지 않지만 요즘 국내에도 무인 점포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미트박스365는 분당 등에 무인 정육점까지 설치했다. 무인 편의점에 무인 술집 등 다양한 형태의 무인 점포들이 각처에서 미래 가능성을 ‘테스팅’ 중이다. 『리테일의 미래』저자인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마케팅 전공 교수는 IT(정보기술)가 소비 행태를 바꾸는 중이고, 미래에는 IT의 영향력 강도가 더 커질 것이로 예견했다. 무인 점포는 한가지 사례일 뿐이다.
얼마 전 국토해양부는 드론을 활용한 배달 서비스를 시현한 바 있다. 한강 고수부지처럼 탁 트인 공간에서 일종의 무인 배달을 진행한 것이다. 국토부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실험을 진행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만일 드론을 통한 배달 시대가 열린다면 일자리와 소비 공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게 분명하다. 사람들은 주말이나 모처럼 나들이를 가고 싶을 때 외식을 하고, 그 외에는 집이나 직장에서 배달로 식사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 배달은 사람이 할 수도 있고, 드론이나 자율주행 트럭이 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IT가 리테일의 미래를 바꾸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코로나19 같은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의 반복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밀집된 공간을 선호하지 않는다. 맛집을 방문하기 위해 다닥다닥 줄을 선 채로 비좁은 공간에서 음식을 먹는 일이 언제쯤 재현될까, 기약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같은 추세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코로나19 이전에 유행처럼 번졌던 ‘갓’물주의 시대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다. 지인 A씨가 들려준 일화는 이런 질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40대 후반인 A씨는 고교 동창들과 오랜만에 모임을 가졌다. ‘아재’들의 화제가 늘 그렇듯이 대화는 자연스럽게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결론은 이랬다. 아파트 투자자 ‘윈(win)’. 2017년에 서울 잠원동 아파트를 약 10억원대에 구매한 이는 현재 약 8억원의 평가이익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이에 비해 비슷한 돈으로 상가에 투자해 임대료를 받던 또 다른 지인은 은행 대출금을 갚고 나면 손에 쥐는 건 쥐꼬리 수준이다. 얼마 전 연예뉴스에서 화제가 된 악동뮤지션 멤버의 47억원짜리 건물 수익률도 연 4.5%라고 하지 않던가.
건물주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하나 더 추가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23일 코로나19로 피해를 당한 상가 임차인에게 임대료 감액청구권을 부여하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24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 임차인은 건물주에게 감액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또 개정안에 따르면 법 시행 후 6개월 간 연체가 발생하더라도 계약 해지나 갱신거절 사유에 해당하지 않도록 특례 조항을 마련했다. 현행법은 3개월간 임대료가 밀릴 경우 계약 해지나 갱신 거절의 사유가 된다고 못 박고 있다.일명 ‘임대료 인하 요구권’이 상가 임대차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체적인 우려는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적이다.
우선 건물주의 범위가 너무 다양하다는 게 문제다. 서울의 역삼, 선릉 등 금싸라기 땅에 있는 건물들은 그 지역 ‘큰손’들이 몇 채씩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유흥 상권이다.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보니 코로나19로 임차 상인들이 생사의 기로에서 허덕이고 있어도 임대료 인하 요구에 대해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코로나19도 잠잠해질 것이고, 목 좋은 곳의 점포들엔 다시 손님이 몰릴 것이라는 셈법일 것이다.
‘주님 위의 건물주’들이 있는 반면, 상당수 건물주들은 사실 은퇴 후 소득으로 임대를 택한 이들이다. 70대 노부부인 B씨는 임대료를 제외하고는 소득이 ‘제로’다. B씨는 매달 들어오는 임대료로 은행 대출 이자를 갚고, 생활을 영위한다. 만일 임차인들이 임대료를 6개월 동안 내지 않는다면 B씨 또한 현금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물론 B씨의 상가를 물려받을 자식들이 용돈 겸 돈을 모아 대출 이자 정도야 갚을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B씨 같은 건물주들도 나름의 고충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대학 등 공공기관들도 임대료 인하에 고민이 커질 것이다. 코로나19로 대학가 상권이 거의 전멸되면서 대학에 입점해 있는 식당, 편의점 등은 매출이 90% 가량 줄었는데도 임대료는 한푼도 에누리 없이 내고 있다. 대학들도 등록금 반환 등의 이슈로 ‘제코가 석자’라서다.
자영업 창업 전문가들은 급진적인 집값 대책으로 전세 대란이 일어났던 것처럼 이번엔 상가 임차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존 임차인들은 그렇다쳐도 새로 창업을 준비하는 소상공인들이 풍선 효과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편의점 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한 편의점 업체 관계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는 입지는 요즘 각 편의점 본사마다 가맹점을 내려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그나마 코로나19로 인해 임대료가 예년 수준이거나 약간 떨어졌었는데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확정된다면 건물주들이 보증금을 대폭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임대료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에 보증금 문턱을 높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건물주들이 ‘오 마이 갓’만 외치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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