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를 사랑할 때 '복리로 불어나는' 매력자본

입력 2020-09-25 17:24   수정 2020-09-26 02:11


거울 앞에 선 르네(에이미 슈머 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툭 튀어나온 배, 처진 팔뚝 살, 셀룰라이트가 선명한 허벅지다. 그녀는 바지 위로 튀어나온 뱃살을 잡으며 한숨을 쉰다.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과도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결심한 듯 거울을 직시하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시선은 발밑으로 떨어진다.
매력자본 없어 괴로운 르네
르네는 자신감이 없다.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해도 사이즈를 묻는 게 두려워 발걸음을 돌린다. 덩치가 커 드세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식당에서도 크게 웨이터를 부르지 못한다. 그녀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직장 생활로까지 이어진다. 화장품을 좋아하는 그녀가 일하는 곳은 명품 화장품 브랜드인 ‘릴리 르클레어’. 그녀의 꿈은 도심 한복판에 화려하게 장식된 본사에서 일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차이나타운 구석 한편에 마련된 온라인 지부에서의 일상이다.

어느 날 그녀는 본사의 채용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면접장은 늘씬하고 매력적인 여자들로 가득 찰 것이기 때문이다. 그 틈에 서 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누구나 동경하는 릴리 르클레어 본사에 취업하기 위해선 화려한 스펙은 물론 주목할 만한 외모가 필수조건이었다. 르네는 단념한다.

르네는 ‘매력자본’이 없어 손해를 보는 전형적인 사례다. 매력자본은 2010년 캐서린 하킴 런던정경대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자본이라 하면 대다수는 돈, 토지, 생산공장 등 경제적 자본을 떠올린다. 자본은 사전적 의미로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생산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은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을 통해 높아진 생산성을 일컫는 ‘인적 자본’, 사회생활을 통해 확보한 인적 네트워크 ‘사회적 자본’ 등이 있다.

하킴은 이에 덧붙여 매력자본을 추가했다. 매력도 부 명예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낳는 자본이 된다는 것이다. 매력 있는 사람은 똑같은 노력을 해도 더 좋게 평가받고, 돈을 더 받거나 더 좋은 직장을 다닐 수 있다.

호주 멜버른대에서는 2009년 이를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외모와 연봉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문을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평균보다 잘생겼다고 평가한 그룹은 평균 91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었고, 스스로 평균보다 못생겼다고 한 그룹은 평균 5500만원을 벌고 있었다. 외모가 3600만원의 연봉 차이를 만들었다.

행동경제학에 뿌리 둔 매력자본
매력자본은 고전경제학의 관점에선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고전경제학에선 편견, 감정, 속임수 등에 흔들리지 않는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다. 어떤 사람의 일부분인 매력이 다른 특징까지 고평가받게 한다는 매력자본의 원리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자 비합리적 사고라 할 수 있다. 고전경제학에서 상정하는 합리적 인간만 사는 세상이었다면 매력자본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매력자본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선 행동경제학을 소환해야 한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행동을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 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인간은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 사람들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게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넛지 효과’, 현상을 이해하는 사고구조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한다는 ‘프레이밍 효과’ 등이 행동경제학의 주요한 예시다.

매력자본은 행동경제학의 ‘후광효과 이론’과 닮았다. 후광효과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특정 대상의 두드러진 특성을 통해 연관되지 않은 다른 특성을 좋거나 나쁘게 평가한다. 후광효과 이론은 마케팅 분야에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가령 식당 인테리어의 어떤 포인트에 힘을 줬더니 손님들이 음식까지 맛있다고 느끼더라는 식이다.
외모만이 매력자본이 아니다
르네는 평소와 다름없이 헬스장의 스피닝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육중한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 자전거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힌다. 그것이 계기였다.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뜬 르네. 그녀의 눈에 비친 자신의 허벅지는 누구보다 매끈했다. 또 팔은 왜 이렇게 가늘어졌을까. 거울을 확인해 보니 스스로가 너무 예뻤다.

반전은 그녀의 모습은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머리를 다치며 자신이 예쁘다고 착각하게 됐다. 그럼에도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한 그녀는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누구보다 우아하게 쇼핑을 하기 시작했고, 식당에선 당차게 주문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곧장 릴리 르클레어 본사로 달려가 이력서를 냈다. 당찬 모습은 면접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면접이 시작되자마자 “100% 자신 있어요. 제 모습을 보세요. 누구보다 본사에 어울리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본사 대표 에이버리 르클레어(미셸 윌리엄스 분)는 처음엔 통통한 외모에도 자신감을 가진 르네의 모습을 생소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단단한 목소리, 일자리에 대한 열정, 강직한 눈빛은 르네를 돋보이게 했다. 그렇게 르네는 본사에서 정식으로 일하게 된다.

여기서 외모만이 매력자본이 아니란 점을 알 수 있다. 하킴 교수는 매력자본을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외모, 섹시한 매력(행동), 유머감각, 활력, 표현력, 성적 능력 등이다. 누가 봐도 별로인 외모의 르네가 아름답게 보인 이유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활력을 얻었다. 여유가 생겨 유머감각도 갖추게 됐다.


매력자본이론에 따르면 외모 가꾸기에 혈안인 현대 사회에서 르네는 활력, 유머감각으로 그 틈새를 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프1>에서 볼 수 있듯 매력자본도 경제적 자본의 논리와 같이 그 값어치가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A점)에서 정해진다. 해당 자본의 공급과 수요의 증감에 따라 값어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식이요법과 운동, 화장품, 향수, 성형수술 등 매력자본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수두룩한 현대사회에선 <그래프2>와 같이 외모 자본의 공급곡선은 날이 갈수록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매력자본은 자신감으로부터 온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러, 르네는 화장품 개발 행사에서 발표자로 나선다. 르네가 매력자본을 발판으로 본사에서도 승승장구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화장품의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 자신의 사진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프레젠테이션에 띄웠다. 사진을 비교한 순간 그녀는 놀랐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과거 자신과 현재의 자신은 같은 사람이었다. “마법이 아니었어. 둘 다 나였어. 나를 의심하지 않았을 뿐이야.”

르네가 처음에 그랬듯 우리는 학교를 다니고 사회로 나오며 스스로를 의심하고, 눈치 보며, 움츠러든다. 어렸을 적 순박한 웃음도 누가 볼까 두려워 차가운 표정 속에 감춰둔다. 거울 속엔 혐오스러운 아무개가 있을 뿐이다. 르네는 발표를 마치며 담담히 말했다. “나를 의심하던 날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제 그런 순간들을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나로 사는 게 자랑스러워요.” 그녀는 더욱 단단한 매력자본을 갖게 됐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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