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국 상·하원은 인텔과 퀄컴 등 반도체 대기업들이 미국의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25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신설하는 법안에 합의했다. 의회는 2021회계연도(2020년 10월~2021년 9월) 예산안에 이를 반영할 계획이다. 반도체 생산공장과 연구시설의 ‘유턴’을 지원하는 리쇼어링(해외에 진출한 기업을 자국으로 돌아오도록 유도) 정책이다.
법안에 따르면 연방정부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과 연구시설을 짓는 기업에 건당 최대 30억달러의 보조금을 준다. 반도체 공장 건설에는 100억달러 안팎의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조금 지급이 상당한 유인책이 될 것으로 미 의회는 기대하고 있다. 안보상 고도의 기밀 유지가 필요한 반도체 생산을 위해 국방부 등이 50억달러의 개발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에 뒤진 반도체 미세공정화 기술을 만회하기 위한 연구개발에도 50억달러의 예산을 배정한다.
특정 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데 신중한 미국이 공장 건설 등에 직접적으로 보조금을 주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미 의회가 리쇼어링 정책을 꺼내든 것은 중국이 반도체 생산 분야에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미국 정보기술(IT)·이노베이션 재단에 따르면 인텔 등 미국 기업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47%로 2위인 한국(19%)을 크게 앞선다. 하지만 반도체 설계에 특화한 팹리스(생산공장이 없는 반도체 회사) 기업이 대부분이어서 생산을 삼성전자와 TSMC 등에 위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생산능력 기준 미국의 점유율은 12%로 15%인 중국에도 뒤진다. 2014년부터 5000억위안(약 85조8450억원)이 넘는 보조금을 투입해 반도체산업을 집중 육성해온 중국 정부는 2025년 반도체의 70%를 자국에서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0년 뒤면 반도체 생산 점유율이 24%로 대만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생산을 계속해서 해외에 의존하면 국가안전보장 측면에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미 의회와 정부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앞서 미 민주당은 3500억달러 규모의 산업진흥법을 제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중국의 급속한 부상에 대응해 미국 내 제조업 경쟁력을 10년 내 대폭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한국 기업들은 피해를 볼 것으로 우려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시장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10조원을 들여 경기 평택에 최신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짓고 있다.
뉴욕=조재길/도쿄=정영효 특파원 road@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