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가지도, 오지도 말자는 사상 초유의 비대면 추석을 맞는 세대별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명절 이동을 최대한 줄여서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을 막자는 방역 당국 취지엔 세대가 달라도 대체로 공감했다. 다만 5일에 달하는 명절 연휴가 이전 추석과는 어떻게 다를지 기대하는 마음은 세대별로 온도차가 컸다.
한경닷컴이 비대면 추석을 맞아 20~60대까지 다양한 세대별 독자 30명을 인터뷰해본 결과다.
대체로 20대 청년들은 잔소리와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난 추석에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고향에 가지 않아도 되는 명절은 오히려 여름 휴가와 같은 자유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가족이나 친척을 못 보는 아쉬움보단 친구들과 연휴를 즐길 설렘이 컸다.
한가위만 되면 ‘명절 증후군’에 고통받던 30~50대 주부들도 대체로 비대면 추석을 반겼다. 결혼 26년차에 처음 명절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는 한 주부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반면 60대 부모 세대는 달랐다. 괜스레 서운하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코로나 사태로 자녀들이 방문하지 못하는 건 백번 양보한다 해도 마음 한켠 자리 잡은 서운함마저 감출 순 없다는 반응이었다.
김씨는 "명절 이전부터 서울 친구들은 잘 놀러 다닌다"며 "어제도 한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술집 사진을 올렸다"고 귀뜸했다. 결국 김씨는 한 친구의 성화에 금요일 하루 서울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김씨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 추석 고향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직장인 추모씨(28)는 "친구들도 거의 다 고향에 안 가니까 계속 술 약속을 잡자고 한다"며 "동생은 벌써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놀 생각에 신나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20대 청년들이 이번 추석 유난히 신난 데에는 친구들과의 재회 외적인 부분도 크다. 명절마다 잔소리로 고통받던 취업준비생은 코로나를 핑계로 자유로워졌고, 어색한 분위기와 가부장적인 모습에 신물이 난 직장인들은 휴식다운 휴식을 맞이하게 됐다.
이 때문에 20대 청년들은 코로나가 겹친 이번 명절에 부모님을 못 뵈는 아쉬움에도 좋은 점이 훨씬 많다고 입을 모은다.
부모님의 권유에 서울 집에서 추석을 보낼 것이란 취업준비생 이모씨(26)는 "취직자리 하나를 알선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매번 어른들이 '요새 뭐하냐, 시집 안 가냐'고 묻는 거 너무 불편했다"며 "부모님을 못 뵈는 것 외에는 모든 부분이 좋다"고 말했다.
직장인 신씨는 "어색한 분위기와 여자들만 일하는 모습 등 모두 불편했다"며 "텔레비전 채널 하나 바꾸기 힘든 상황부터 명절 내려갔다 오면 휴일이 확 줄어드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심리적으로 훨씬 여유로운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결혼 10년차 주부 김모씨(34)는 올 추석 처음으로 시댁을 방문하지 않는다. 김씨는 "애들도 어리고 어머니 연세도 있으신 점을 말씀드리니 '오면 좋지만 알아서 결정해라'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사실 시댁에 가면 설거지도 집보다 배로 많고 안 하던 전도 부치니 휴식을 취할 수 없다"면서 "이번에는 집에서 쉬니 시간 여유도 있고 할 일도 없다"며 웃음 지었다.
결혼 25년차 홍모씨(50)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홍씨는 "30년이 다가오도록 시댁 가서 밥하고 설거지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이번에 코로나를 이유로 며느리들이 상대적으로 편하게 가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명분이 된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고 전했다.
코로나가 겹친 추석이 주부들에게 처음으로 휴일다운 명절을 찾아준 것. 주부들은 방역을 철저히 지키되 자유 시간을 만끽할 것이라 예고했다.
홍씨는 "이번 추석에는 최대한 많은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며 "다들 원을 풀자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대화도 하기로 했다"고 첨언했다.
올해 처음으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는 결혼 26년차 김모(53)씨도 "이번에는 오랜만에 서울 근교로 가족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먼저 오지 말라고 권유하지 않으면 방법은 없다. 특히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며느리들은 눈치를 보느라 어린아이를 안고 시댁으로 향한다.
결혼 2년차 이모씨(36)는 "돌도 안 된 아이가 있음에도 먼저 오지 말라고 말하지 않으셨다"며 "엄마만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결혼 5년차 이모씨(35)도 "친척분들이 다 오시면서 얼떨결에 시댁에 가게 됐다"며 "감염이 나만 조심하면 되는 게 아닌데, 전국 각지에서 오니까 그게 제일 걱정이다"고 한숨을 쉬었다.
올해 추석 서모씨(63) 집에는 자녀들의 방문이 없다. 그는 "자식 안전을 생각해 먼저 내려오지 말라고 했지만 서운한 건 당연히 있다"며 "평상시에도 얼굴을 잘 못 보는 데 명절 때만이라도 봤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크다"며 울상을 지었다.
강원도 원주시에 거주하는 정모씨(62) 또한 "다들 멀리 사니까 연휴 때 얼굴이라도 보면서 같이 보내고 싶은데 그 부분이 가장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반면 이번 명절이 며느리들에게 안식년 같은 시간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부모 세대도 있다.
전라북도 익산시에 거주하는 조모씨(65)는 "사실 며느리 입장에서는 이 기회에 시댁에 안 가니까 좋은 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며 "오히려 며느리에게 주어진 한해의 휴식년이라 생각하면 고부 관계가 좋아지고 추후 명절 문화 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김수현/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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