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에서 출생한 선생은 1913년 휘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던 중 은사인 이세영을 따라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했다. 1920년 북로군정서의 사관연성소 학도단장과 김좌진 장군의 부관으로 일하면서 청산리 전투에 참전했다. 청산리 전투는 일본군의 간도 침입 작전을 차단해 만주지방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발판이 됐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했으나, 자유시참변 이후 다시 만주로 돌아와 1922년 북로군정서 부사령관으로 활동했다. 1926년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돼 활동하던 중 1927년 러시아 첩보기관에 체포됐다. 1930년 연해주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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