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대회에 안와도 돼"…KB금융의 통큰 선수 배려

입력 2020-10-04 18:07   수정 2020-10-05 00:20

‘골프 여제’ 박인비(32)가 이달 중순 후원사가 여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메이저 대회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 불참한다. 그가 이 대회에 나오지 않는 것은 2013년 KB금융그룹과 후원 계약을 맺은 이후 처음이다. KB금융그룹이 먼저 “미국 활동에 주력하는 게 좋겠다”고 멍석을 깔아줘 그의 고민을 덜어줬다.

KB금융그룹 관계자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박인비와 전인지(26), 전지원(23) 등 후원 선수들이 올해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는 출전하지 않는다”고 4일 밝혔다.

후원사 대회에 출전하는 건 대개 계약 조건에 못 박혀 있다.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도 고만고만한 대회 한두 개를 포기하고 국내에 들어오는 게 일반적이다. 후원사는 이런 선수들을 위해 대회 일정을 조정해가면서 ‘선수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해외 투어 선수들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단순히 한두 개 대회를 포기하면 되는 문제가 아닌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LPGA투어 일정이 뒤죽박죽 꼬이더니 KB금융 스타챔피언십이 치러지는 주간에 LPGA투어 메이저 대회 KPMG 위민스챔피언십이 열리는 일이 벌어졌고, 선택이 필요해졌다.

박인비는 KPMG 위민스챔피언십 출전이 절실하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연패를 기록하며 좋은 추억을 간직한 이 대회에서 시즌 두 번째이자 통산 21승에 도전한다. 포인트를 쌓아 내년 도쿄올림픽 출전 순위를 끌어올릴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1년에 한 번뿐인 후원사 대회를 무턱대고 거를 수도 없는 일.

속앓이는 의외로 쉽게 해소됐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사진)이 나섰다. LPGA투어 선수들이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 출전하려면 자가 격리 기간 2주를 감안해 숍라이트클래식, KPMG 위민스챔피언십 대회 등을 포기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미국에 남아 국위 선양을 하는 게 더 의미 있지 않겠느냐”고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윤 회장은 종종 ‘서포터론’을 말한다. 멀찍이 물러서서 지원하는 게 진짜 후원이라는 것이다. 2014년 취임 이후 ‘골프단’ ‘소속 선수’라는 표현을 금지한 것도 이런 개념이 녹아 있다. 실력은 있지만, 어려움에 빠진 선수를 찾아내 묵묵히 뒷받침하는 ‘키다리 아저씨 후원’도 그런 맥락에서다. 지독한 슬럼프로 후원시장에서 소외돼 있던 박인비를 발굴한 것이나, 우승이 없는 무명의 안송이(30)를 10년간 후원한 게 대표적이다. 안송이는 지난달 팬텀클래식에서 통산 2승을 거둔 뒤 “첫 승을 할 때까지 10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준 후원사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목표”라고 말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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